새전북신문

관계의 공간

[책마주보기] 김호연의 '불편한 편의점1'(김혜영)

기사 작성: 이종근 - 2024년 08월 26일 07시52분

‘불편한 편의점’이란 제목이 지닌 형용모순이 눈길을 끄는 이 책은 편의점을 통하여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들이 갖는 사회에 대한 불편한 시각과 해결 방법을 제시한다. 이 책에 나타난 편의점은 도심에서 벗어나 있다는 데서 서민들의 삶을 반영하는 공간으로, 사회의 중심이 아닌 주변의 존재들을 조명하는 공간적 상징이 강하다. 장소 혹은 공간은 관계의 공간으로 기능할 때 그 의미가 증대됨을 암묵적으로 시사하는데 편의점은 인간관계를 보여줄 수 있는 장소로 관계적 삶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장소는 인간 실존이 외부와 맺는 유대를 드러내는 동시에 인간의 자유와 실재성의 깊이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인간을 위치시킨다.”라고 언급한 하이데거에 따르면 편의점은 중심이든 주변이든 실존들의 유대와 자유를 확인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염 여사는 아르바이트생들과 함께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데, 자신의 파우치를 찾아준 ‘독고’를 야간 아르바이트 직원으로 채용하게 된다. 알코올중독 노숙자로,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하던 ‘독고’가 염 여사 덕분에 사람들을 만나며 몸과 마음을 조금씩 치유해 나간다. 노숙자 ‘독고’가 삶의 조력자를 만나 자신의 잃어버린 신분인 의사로 귀환하는 서사 과정은 변형된 영웅 서사라 할 수 있다. 소설은 일곱 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편의점을 둘러싼 다양한 인물의 시선으로 독고의 모습을 비춘다. 독고가 기억의 퍼즐조각을 하나씩 맞추며 자신의 신분을 찾아가는 과정은 동료직원, 고객들과 소통하는 과정으로서 인간관계의 회복을 통해 치유에 이르는 여정이다. 그는 과거에 불법과 합법 사이에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었던 성형외과 의사였으며 자신의 환자를 다른 사람에게 대리 수술을 맡기는 비윤리적인 행위를 저질렀고 급기야 의료사고를 낸다. 그런 비양심적인 행동이 기억의 회복으로 인해 재인지된 것인데 이를 반성하며 의료봉사를 결심하고 다시 살아가 보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관계의 공간인 편의점이 회복의 공간으로 변모된다.

한편 정인경이라는 인물의 역할이 시선을 끈다. 작중 인물의 이야기를 작품화해 자기반영적 서사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밥 딜런의 자서전에서 밝힌 말로 ‘행복은 뭔가 얻으려고 가는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가 행복이라고’ 언급하는 대목에서는 생각을 멈추게 하는데 가슴에 남는 이 구절은 존재를 변화시키는 계기로 기능하기도 한다. 이 책 역시 관계의 철학을 이면하는 가운데 인간과 인간이 만나서 서로에게 무엇을 선물할지를 묻게 한다. 그러니까 행복은 타자를 향한 열림이요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라는 암묵적 메시지로써 행복한 삶은 타인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에서 비롯된다는 탈중심적 사유에 닻을 내리게 한다.

김혜영작가는

2018년 ‘수필과비평’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으며, 현재 부안학생교육문화관 독서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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