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균의 진실(지은이 백승종, 펴낸 곳 논형)'은 원균 장군에 대한 사회적 통념 가운데 잘못된 부분이 많음을 지적한다. 다양한 연구 방법을 동원해 저자는 역사의 진실을 다시 찾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정밀한 사료 분석을 통해 지난 수백 년간 왜곡과 편견에 파묻힌 역사를 다시 조명한다. 실록·공신교서·행장과 다양한 사료를 집요하게 추적한 결과 ‘칠천량해전’의 허구성을 밝히고, 난중일기·징비록의 편향성을 드러낸 점은 일대 쾌거라 하겠다. 그리하여 원균 악장론(惡將論)이 사실은 조작된 기억의 산물임을 입증했다.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유튜브와 SNS는 하루에도 수천 개 이상의 영상과 자극적인 제목의 뉴스, 그것도 알고리즘이 정교하게 선별한 것들을 쏟아낸다. 문제는 이 정보들이 ‘정확하냐’가 아니라, 얼마나 자주 ‘반복되느냐’에 따라 여론이 결정된다는 점이 아닐까. 사람들은 사실보다 “많이 보이고 많이 들리는 이야기”를 더 잘 믿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알고리즘이 만든 세계를 ‘현실’로 착각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정보가 반복되어 제공될수록 왜곡될 가능성은 오히려 커진다. 특정한 관점, 편집자의 의도된 왜곡, 그리고 조회 수를 올리기 위한 과장이 겹쳐질수록, 사실은 흐려지고 감정이 선동되어, 마지막에는 허구가 진실로 굳어진다.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비판적 사고”다.
정보가 차고 넘칠수록, 우리는 ‘받아들이는 속도’보다 ‘검증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이처럼 비판적인 태도는 현대의 디지털 정보 환경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역사를 읽을 때도 그 점은 마찬가지다. 원균을 둘러싼 무자비한 왜곡과 과장이 바로 그런 예다.
수년 전부터는 ‘원균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그에 관한 종합적인 연구에 착수하였다. 기왕의 연구 결과를 섭렵하고, 관련 자료를 샅샅이 검토한 결과 오늘에 이르러 이 책과 같은 대작(大作)을 저술하기에 이르렀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편견과 왜곡을 떨쳐내고 원균의 진실을 새롭게 발견한다. 또, 임진왜란 및 정유재란의 성격에 관하여서도 여러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울러, 이 책은 역사연구에 사료비판(史料批判)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한다.
책에서 지은이는 원균을 영웅이라며 미화하지도 않고, 악역으로 고착시키지도 않는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믿어 온 통념을 사료를 통해 하나씩 검증한 것이 지은이의 가장 큰 미덕이다.
‘칠천량 사태’를 예로 들면, 그것이 원균의 개인적 무능 때문이 아니라, 군제·파벌 갈등·전쟁 환경 등 복합적인 구조 속에서 일어난 참사였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은 이 책의 큰 장점이다. 더구나 대중적 역사 인식의 근원이나 다름없었던 '징비록'의 칠천량 해전 기록이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을 세밀하게 논증해, ‘반복된 이야기’가 어떻게 ‘진실처럼 보이는 이야기’가 되었는지를 추적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업적이다.
군제의 허술함, 명령 체계의 혼선, 군비 부족, 조정의 파벌 갈등 등 구조적 요인을 저자는 아울러 고려한다. 그는 패전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할 때 사건에 관한 엇갈린 보고와 선조의 판단과 지시, 당시 수군의 실제 상태 등을 세밀하게 추적해 원균 개인의 오판이 아니라 조선 수군이 감당하기 어려운 복합적 조건이 문제였음을 증명한다.
“통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지은이는 원균이라는 역사적 사례를 통해 깨닫게 한다. 때로 역사가가 다루는 사료는 무색무취한 것처럼 보이는데, 멋진 서사는 감정을 자극하며 패싸움을 충동질할 뿐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사료를 깊이 읽는 날카로운 눈을 키우기란 어려운 일이겠지만 통념이나 한 시대를 주름잡은 역사적 서사를 넘어서려면 사료를 제대로 분석할 줄 알아야 하지 않나.
전주출신의 지은이는 독일 튀빙겐대학교 교수, 보훔대학교 한국학과장 대리 및 서강대학교 교수를 지냈고, 막스 플랑크 역사연구소, 프랑스 고등사회과학원, 경희대학교 및 한국기술교육대학교에서 초빙교수를 지냈다.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 조선시대에 관한 것으로는 '상속의 역사', '신사와 선비', '조선, 아내 열전', '세종의 선택', '문장의 시대, 시대의 문장',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 '고성현령 원전과 진주목사 원사립' 및 '해월 최시형' 등이 있다.
한국출판평론학술상과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했으며 다년간 한국출판문화상 심사위원을 역임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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