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월요아침]호국의 성지 임실의 윷 문화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06월 09일 14시03분

임실군 가덕리 상가마을 산 골짜기의 윷판바위는 상가 윷판형 암각화 이름으로 전라북도 기념물 제133호로 지정되었다. 지난 2014년 10월 한국암각화학회가 임실상가윷판유적 학술세미나를 개최하고, 학술보고서를 발간하였다. 이 보고서를 근거로 2016년에 상가 윷판형 암각화가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상가 윷판바위에는 무려 23점의 원형 윷판이 조각되어 있다. 이 윷판바위는 국내 최대 규모의 윷판유적으로 문화유산의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윷판은 전국 산천계곡의 평평한 바위면에서 발견되고 있지만, 한 바위면에 23점 윷판조각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다. 윷판은 전세계에서 한반도에서만 발견되는 도형일 뿐만 아니라 삼국시대부터 사찰 주초석과 분묘 유적에서 발견되고 있다. 윷놀이(擲柶戱)는 한국 민족고유의 오랜 역사를 가진 민속놀이다. 윷놀이는 4개 윷가락을 던져 윷판의 순행을 다투는 방식의 놀이다. 왜 우리나라 백성들은 고대국가부터 윷판 순행을 놀이로서 즐겨온 것일까.

암각화학자들은 윷판을 천문도(天文圖)로 해석하고 있다. 윷판은 북극성을 정점으로 하늘의 별자리 28수가 춘하추동에 맞춰 운행하는 도형이라는 해석이다. 윷판형 암각화는 삼국시대부터 등장한다. 백제시대 익산 미륵사 주초석에 윷판조각이 새겨져 있다. 임실군(任實郡) 지명은 백제시대의 지명이다. 임실 상가 윷판유적도 삼국시대까지 올라갈 수 있고, 근현대 시점까지 내려올 수도 있다. 윷놀이는 과거에 멈춘게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경도잡지의 윷점과 윷경의 전승을 찾아 조선시대로 내려가보자. 조선중기 김문표(1568〜1608)는 윷판도가 천문역법과 음양오행의 구도라는 사도설(柶圖說)을 주창하였다. 사도설은 조선시대 유불도를 섭렵하면서 유교경전을 재해석하는 도학파들의 논리에서 나왔다. 도학(道學)은 송학, 주자학을 말한다. 도학파들은 수신을 실천하고, 태양의 주기와 우주질서에 관심이 많았다. 도학파들은 일제의 국권 침탈에 맞서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충절정신이 강하였다.

상가 윷판형 암각화 23점은 임실지역에 국권 수호에 앞장서고 민족주체성을 고취시키려는 도학파들이 많았음을 말해준다. 1905년 강제로 고종황제를 위협하여 외교권을 빼앗는 을사조약을 체결하고, 1907년 고종의 왕위를 강제로 순종하게 양위시키는 정미조약을 체결하자 우국충정의 마음으로 임실 진안지역 유림(儒林)들이 의병을 일으켰다. 이 때 임실 출신의 정재 이석용이 진안 마이산 용암에서 호남창의동맹단을 결성하고 의병장으로 28의사와 함께 1909년까지 일본 군대를 상대로 전투를 치렀다. 이석용의 사당인 소충사에는 일본군과 싸운 28명 의사(義士)들의 비석을 세우고 비석 상단에 28수 별자리를 하나씩 새겨 넣었다. 국내 유일의 천문비가 소충사에 조성된 것이다.

각 비석에는 동방칠수, 서방칠수, 남방칠수, 북방칠수 28수 별자리와 북극 남극의 중앙비를 포함하여 29수를 새겼다. 중앙비 전면에 북극 호남창의대장 이학사를 새겼고, 후면에 남극을 새겼으며, 옆면에 일월화수목금토 칠요(七曜)를 새겼다. 칠요는 하늘에 움직이는 일곱 개의 행성을 뜻하고, 남극과 북극은 우주의 중심 지축이다. 남북극과 일요 행성을 새겨놓은 중앙비는 의병장 이석용을 우주의 중심부에 비유하였고, 동서남북방의 28의사 설정은 하늘의 적도 주위를 주천(周天)하는 28수 별자리에 비유하였다. 28수도가 윷판도이다. 윷판도는 태양의 주기인 춘분, 하지, 추분, 동지를 음양오행에 맞춰 배열한 태양력의 우주천체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책력이 없고 역법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에 우리 조상들은 성신(星辰)이 천체 궤도에 따라 주천하는 하늘의 별자리를 보고 낮밤(日月)이 바뀌고 4계절의 순환을 알았고, 태양력의 천체 관측에 따라 윷판이 만들어졌다. 윷판도는 태양력의 상징적인 성수도(星宿圖)라 할 수 있으며, 동양의 천문도라 할 수 있다.

그럼 왜 임실 상가 윷판형암각화에는 23개의 성수도가 새겨진 것일까.

1907년 일제가 고종황제를 강제 폐위시키자 비분강개하는 유림들은 나라가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진안 마이산 용암에 집결하여 의병을 창의하고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호남의병창의 역사가 서린 임실 소충사에는 호국정신과 역사의식이 깃들어 있다. 소충사의 28수 천문비는 임실 상가 윷판바위에서 23점 윷판을 새긴 사람들이 임실지역 유림들이었음을 시사한다. 일제강점기 일제의 탄압으로 암흑같은 시절에 임실의 도학파들은 상가마을 계곡 윷판바위에 모여 국권 수호와 민족정기를 회복하려는 정신으로 윷판을 새기며 민족 광복과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소망하였다.

임실 오수는 항일운동의 성지다. 임실에 국립호국원이 들어섰고, 신병훈련소인 35사단이 이전하여 자리를 잡았다. 임실은 소충사와 국립호국원, 35사단으로 명실상부한 호국의 성지가 되었다. 35사단 신병훈련 과정에서 호국의 성지 소충사를 도보순례하고, 그곳에서 이석용 의병장의 호국정신을 기리는 정신훈련으로 윷놀이 연행도 의미가 있다. 임실군은 호국의 성지 선양 행사로 임실 사선대에서 전국윷놀이대회, 세계윷놀이대회를 주최하고, 윷놀이를 디지털콘텐츠 이(e) 스포츠 게임과 모바일 게임으로 개발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 앞장 서 진정한 윷문화도시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

/송화섭(전 중앙대 교수, 호남문화콘텐츠연구원장)

전북을 바꾸는 힘! 새전북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새전북신문 기자의 최근기사

[월요아침]호국의 성지 임실의 윷 문화

[온누리]원자력 발전과 전력전쟁

[사설] 전북, ‘농촌 유학 일번지’로 거듭나다

기혈순환 개선 돕는 공진단, 갱년기 증상 완화에 효과 기대

[달그락]AI 윤리 문제 인지의 필요성…. 청소년들이 생성형 AI에 의지하는 태도 버려야

[문화로 이야기꽃]박사골의 ‘찻집 박수다’, 이야기꽃 피는 곳

[알림]전주웨딩거리 와글와글시장가요제 참가안내

[오늘의 길목]머리위에 왕관을 쓴 뿔제비갈매기

[사설]새 정부, 낙후 전북 지원 늘려야

[사설] 도시환경 변화 반영해야

[온누리]두 눈의 하모니, 입체시

Leave a Comment

많이 보는 기사

살기 좋은 도시 완주에서 성악의 향기 전해

사전투표하는 시민들

사전투표하는 서거석 도교육감 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