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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식물 바이러스와의 인연, 그리고 과제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06월 02일 13시54분

1998년 3월 31일, 농촌진흥청 농업과학기술원 바이러스 연구실에 민원이 접수되었다. 담당 연구원은 이제 갓 바이러스 연구를 시작한 새내기로 그 연구원이 처음 인연을 맺은 바이러스는 1980년대 후반 경남 진주에서 최초로 발생이 보고된 오이녹반모자이크바이러스(CGMMV)였다. CGMMV는 종자에 바이러스 입자가 묻어 발아 과정 중에 어린 묘로 전파가 된 후 순지르기나 열매솎기 등 농작업에 의해 다른 개체로 매우 쉽게 병이 옮겨진다.

그날 접수된 수박 잎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식물의 전형적인 증상으로, 잎이 알록달록하게 변하는 모자이크 증상을 나타내고 있었다. 연구원은 직감적으로 CGMMV 감염을 의심하였고 전자현미경과 항체 검정(ELISA)으로 수박 잎이 CGMMV에 감염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것은 시발점이었다. 그날을 기점으로 전국의 수박 재배 단지에서 쇄도한 민원 시료 검정 결과 모두 CGMMV가 검출되었고 역학조사 결과 종자가 문제였음이 확인되었다. 당시 공식적으로 집계된 피해 규모만 최소 전국의 1,000여 농가, 500ha 이상이었다.

수박을 재배할 때 토양에서 오는 병 피해를 막고 강하게 키우기 위해 접목묘를 사용한다. 각각 비스듬하게 자른 박 유묘의 뿌리부(대목)와 수박 유묘의 지상부(접수)를 접붙이면 서로 융합되어 하나의 개체로 자란다. 그 당시 피해의 원인은 대목으로 사용한 박 대목이었다. 종자회사에서는 종자 채종을 토지 가격과 인건비가 싼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하는 경우가 많은데 당시 문제가 된 박 종자는 중국에서 채종된 종자로 재배 과정 중 CGMMC에 오염되었다.

CGMMV에 감염된 수박은 생육이 불량해지며 과실이 묵처럼 뭉치는 ‘곤약’ 증상이 생겨 상품성을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 현실적으로 식물의 바이러스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은 없다. 연구실 차원에서 바이러스 억제 물질의 선발과 효과 검정까지는 하지만 상용화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핵심적인 문제는 경제성으로 바이러스 치료 약제가 개발된다 해도 저렴하게 보급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사람의 병과 달리 식물 병은 개체 방역이 아닌 공중 방역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사람의 병은 접촉 최소화를 통한 병 전파의 차단도 필요하지만,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치료 기술 개발에 많은 연구와 투자가 집중된다. 지난 코로나 팬데믹 당시 진단 기술과 치료제 개발에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된 이유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물의 경우는 다르다. 개체 수가 많아서 아무리 저렴한 약제를 사용한다 해도 경제성이 떨어지므로 농약을 많이 사용한다. 그런데 바이러스 병은 특성상 농약으로 치료하기 어렵다.

그 연구원은 바이러스 피해를 본 농가에 감염된 개체 제거와 위생관리라는 대책 말고는 도움을 줄 수 없는 현실에 힘들어했다. 2000년 어느 봄날 안동의 농업기술센터를 통해 수박이 이상하다는 한 농가의 민원이 접수되었다. 그 연구원은 바이러스 진단으로 CGMMV 감염을 확인하고, ‘○○○ 선생님이 의뢰하신 수박 시료는 CGMMV에 감염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라는 내용의 답신 공문을 발송했다. 기술센터 담당자를 통해 그 사실을 통보받은 어르신은 “아이고. 올해 농사 끝났네.”라고 큰 한숨을 내쉰 후 경운기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다 경사지에서 구르면서 현장에서 유명을 달리하셨다. 그리고, 나중에 그 소식을 접한 연구원은 죄책감에 한참 동안 시달려야만 했다.

식물 바이러스 병이 문제가 되고 있다. 기후변화와 국제교역 증가 등으로 토마토황화잎말림바이러스(TYLCV), 토마토반점위조바이러스(TSWV) 등 매년 새로운 바이러스가 확인되고 있으며, 그 피해도 날로 커지고 있다. 전국적으로 150종 이상의 바이러스가 확인되는데 방제 대책이 적절하지 않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코로나 팬데믹 당시 과학자들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인류가 상처를 딛고 그 아픔을 극복해 가고 있듯이 식물 바이러스 병도 마찬가지다. 방제의 어려움으로 인한 막연한 두려움보다 농업인과 연구자들의 관심과 시의적절한 진단, 그리고 피해 확산을 위한 노력이 식물 바이러스를 극복하는 최선의 방책이 될 것이다./ 박진우(국립식량과학원 작물기초기반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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