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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흙에 살으리랏다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01월 24일 17시26분

새삼, 흙이 눈에 들어왔다. 허리를 숙여 자세히 보니 수천, 수억 년을 지구에서 버틴 가루들이 뭉치고 다져져 땅을 이룬 모습이 의연해 보인다. 지구의 역사를 품고 있음에도 드러내지 않고 우쭐대지도 않으면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생명을 키우고 있다니 그 어떤 인간의 업적보다 위대해 보였다. 주섬주섬 주머니에 든 휴대전화를 꺼내 ‘흙’의 사전적 의미를 찾았다.

‘지구 표면을 덮고 있는, 바위가 부스러져 생긴 가루인 무기물과 동식물에서 생긴 유기물이 섞여 이루어진 물질’

그러니까 돌의 가루와 죽은 생명체들의 혼합일뿐 ‘흙’ 자체엔 생명력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이 흙은, 이 땅은 식물을 키우고 동물을 키우고 인간이 살아가는 근간이 되어주고 있다. 그 땅을 딛고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그저 고마울 뿐이다.

흙이 새삼스레 눈에 밟힌 것은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는 순간이었다. 흙이 키워낸 작물로 사람에게 이로운 제품을 만드는 일을 하다 보니, 작물의 씨앗을 심고 잘 자라도록 보살피고 수확하기까지 모든 일이 작물에 집중된다. 수확 후에는 가공하고 연구하고 제품화가 되는 과정까지 흙의 위력을 생각해 볼 틈 없이 바쁘게 돌아간다.

10년을 농사업에 종사하면서 작물의 생산과 가공, 판매까지 이어지는 농업의 패러다임을 구축해야 한다는 의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를 실현해야 농촌과 농민의 상생이 가능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고군분투해도 혼자서는 안 되는 일이기에 협업이나 정부나 기관의 협조를 요청하고 농업의 작업 환경을 바꾸기 위해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장에서 느끼는 위화감은 생각보다 크다. 전적으로 개인의 역량으로 치부되는 것들이 많아 한계에 부딪힌다. 농민들, 특히 자영농이지만 소규모 땅에 농사를 짓는 사람이나 농사업을 진행하고 싶지만 자금력이 부족한 농민이 믿고 상담받을 기관이나 법적 자문을 구할 곳이 전무하다.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규제나 제약에 걸린다. 농업의 현장이나 농민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못한 정책이기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통계청에서 조사하는 ‘소멸 지역’의 발표에는 언제나 농촌이 1, 2위를 다투고 있으니 농민의 한 사람으로서 씁쓸하다. 사람들이 도시로 가는 이유는 일자리와 의료나 문화의 혜택이 풍부해서가 아닌가. 일손 부족을 호소하는 농촌이지만 도시로 나간 일손이 돌아오지 않는다. 일이 힘들며 작업 환경이 열악하다는 이유를 댄다. 또한 일한 것에 비해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맹점도 있다. 누구보다 열심히 했지만 예측할 수 없는 가뭄이나 장마, 태풍에 따른 작물의 피해, 병충해나 일조량에 따라 달라지는 수확량은 ‘농업’의 종사를 방해한다. 소득이 보장되지 않는 일에 매달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러한 구조는 농민에게 혹한의 찬바람보다 더 거세다. 농촌을 떠나는 사람과 작물의 수확에 기대 사는 농민, 농사업으로 농촌을 발전시키고 싶다는 사람을 움츠러들게 만든다.

동절기 꽁꽁 언 땅을 보며 사람들은 ‘생명을 품은 대지’라고 찬양한다. 하지만 그 땅은 누군가 흙을 향해 허리를 숙였을 때 인간을 이롭게 한다. 21세기 최첨단과학의 시대이지만 흙의 소중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허공에 발을 딛고 살 수 없지 않은가. 농촌 사회에 보다 적극적인 관심으로 ‘흙에 살으리랏다!’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김태준(농업회사법인 케어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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