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기고]고령화 파고 맞선 고추산업, 지속 가능한 활로 찾아야

기사 작성: 박은희 - 2025년 12월 17일 16시11분

우리 고추산업은 지금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국내 건고추 생산량은 2023년 6.2만톤으로 2010년 9.5만톤 대비 35%, 재배면적은 40% 감소했다. 이에 따라 냉동고추 수입이 증가하며 자급률은 40% 수준으로 떨어졌다.

생산기반이 급속히 약화되는 가운데 가장 우려되는 점은 생산을 이어갈 인력의 부재다. 고추 재배농가의 고령화율은 2010년 51.4%에서 2023년 71.0%로 급등했고, 50세 이상이 95.8%를 차지한다. 반면, 50세 미만의 젊은 농가는 5%에도 못 미치며 대부분이 소규모로 운영 중이다.

소비자의 91%는 국내산 건고추를 선호하지만, 현 추세라면 2034년에는 생산량이 5.9만 톤 내외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화율 71%, 청년농 5% 미만이라는 현실에서 단순히 재배면적을 늘리는 접근으로는 자급률 하락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복합적 위기를 극복하려면 생산 기술 혁신, 산업 생태계 구축, 미래 인프라 조성 등 근본적 해법을 종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먼저, 노동력 절감 품종 개발이 시급하다. 일정 시기에 착과가 집중되는 품종을 통해 방제와 수확 횟수를 줄이면서도 생산량을 확보한다면 노동 부담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 농촌진흥청은 키가 작고 병충해에 강하며 단기간 집중 생산이 가능한 품종 개발을 재배 양식 연구와 병행 중이다.

둘째, 시설재배 기술 확대가 필요하다. 비가림시설은 제곱미터당 약 2만 5천 원의 초기 투자가 필요하지만, 노지 대비 약 3배 내외의 생산성을 확보할 수 있다. 최근에는 관수 및 환경조절 장치 등의 조작이 간소화 되면서 생활가전처럼 쉽게 사용할 수 있다.

셋째, 수확 후 처리 및 유통 체계의 전면적 개선이 절실하다. 현재 전국의 고추종합처리장(RPPC)은 단 7개소에 불과하다. 고추 농가들은 수확 후 선별, 세척, 건조, 가공, 포장, 판매를 개별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으며, 이는 품질 균일화와 유통 효율화를 가로막는 핵심 장애물이다. 정부와 민간기업은 종합처리장 구축 지원 제도 마련을 통해 처리장을 현재의 세 배 이상으로 확충해야 한다.

넷째, 청년농 육성을 위한 실질적 정착 지원이 필요하다. 청년농이 고추 재배에 진입하기 어려운 이유는 높은 작업강도와 초기 투자비용, 불안정한 소득, 영농 외 부대업무의 과중함 때문이다. 정식, 방제, 수확 등의 기계화, 종합처리장 확충과 함께 초기 시설 투자에 대한 지원사업 확대, 소득 안정화를 위한 수매 보장 제도, 멘토링 프로그램 등이 패키지로 제공되어야 한다.

다섯째, 데이터 기반 스마트 영농 인프라와 협력 영농 모델을 조성해야 한다. 환경, 재배관리, 수량 등의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축적하고, 이를 농가 간 상호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

또한 고가의 정식기계, 수확기계, 선별기계 등을 개별 농가가 구매하는 것은 비경제적이다. 지역 농가들이 협력해 장비를 공동 구매하고 공동 또는 청년창업회사가 관리하는 영농 모델을 지원해야 한다. 정부는 공동 장비 구입에 대한 우선 지원, 장비 관리 교육, 이용 일정 조정을 돕는 코디네이터 배치 등을 통해 협력 영농이 실질적으로 작동하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지금의 위기는 단순한 작물 생산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고유의 식문화와 공동체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고령농의 현실을 고려한 생산 기술 혁신, 수확 후 처리 인프라, 청년농 정착 지원, 데이터 공유와 협력 영농이 함께 추진될 때 고추 산업의 지속 가능성이 확보될 것이다./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채소기초기반과 농업연구관 류희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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