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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코로나 19’와 자본주의적 욕망의 그늘

인류의 새로운 미래를 위한 마지막 시련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0년 03월 29일 13시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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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두 (전북대 국문과 교수)



20세기 후반의 대표적인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 미셸 푸코는 “언젠가 20세기는 들뢰즈의 시대로 기억될 것”이라고 솔직히 말한 적이 있다.

주지하다시피, 철학자 들뢰즈는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펠릭스 가타리와 같이 『안티 오이디푸스 : 자본주의와 정신분열』(1972) · 『천 개의 고원』(1980) 등의 명저를 남겼다. 그가 철학계에서 유명해져 논쟁의 중심이 된 것은 앞의 두 책을 통해서이다. 들뢰즈-가타리(공저자명)는 정치-심리학의 입장에서의 이 일련의 공동저술 작업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한없이 조장하는 ‘자본주의’를 집중적으로 집요하게 탐구하고 조명하고자 했으며,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 인류의 현 시대를 ‘자본의 힘’이 끊임없이 기존 체계와 가치를 파괴하면서 새로운 욕망을 창출하는 ‘탈코드의 시대’라고 진단했다.

이런 관점에서, 이들은 거대한 현대 도시들 자체가 모두 탈코드화 된 자본주의적 욕망과 다르지 않다고 진단하며, 이런 현대 인류의 심리적 양상은 우리 인류의 가장 성스런 인간관계인 ‘아빠-엄마-나’의 기본적 삼각관계까지도 ‘자본주의적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게 되었다고 냉정하게 진단한다.

이런 진단은 21세기인 지금도 그들의 진단 시대 그대로인 듯하다. 아니, 오히려 더 심각해진 듯도 하다. 우리들의 일상적인 대화의 중심엔 항상 ‘돈’과 ‘부동산’과 ‘주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한 것 같다. 들뢰즈-가타리의 말대로, ‘탈코드화’ 된 지나친 욕망은 다시 더 지나친 욕망을 자극하고 부르고, 그 더 지나쳐진 욕망은 또 더 큰 더 ‘탈코드화’ 된 욕망을 부르는 식의 이 시대적 ‘탈코드화 현상’은, 이제 우리의 조절능력을 멀리 벗어나는 데에로 나아가고 있는 듯도 하다.

유명한 20세기 상징인류학자 빅터 터너의 진단에 의하면, 20세기 중반까지의 세계는 어쨌든 간에 미국이 주도했고, 거기엔 ‘퓨리터니즘’이란 신성한 아우라가 남아 있었다고 보았다. 그 이후의 세계에 대해 그가 기대한 것은 그동안 서방에 의해 저주받아온 ‘동방의 용’이 그 신성성을 발휘하면서 동서양이 새로운 상생의 단계로 나아가기를 기대하고 죽었다.

그런데, 지금 21세기 초에 우리가 보는 것은, 놀랍게도 터너의 생각은 아직 먼 이상에 불과하고, 들뢰즈-가타리가 냉정하게 진단한 ‘탈코드화’ 된 욕망의 극대화 시대에 우리는 머물고 있는 것도 같다.

이러한 탈코드화 된 정치적 욕망의 시대적 동요는, 우선 거대 중국의 급격한 사회주의적 근현대 자본주의화, 그리고 이에 따라 정치-경제적으로 위협을 받는 서방 특히 미국의 정치-경제적 욕망의 대립과 갈등으로부터 강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이런 관계 속에서 중국에서 본격화된 대재앙인 ‘코로나 19’로 전 세계가 동요하고 있고, 그 결과는 참혹하게도 그것을 세계 인류의 ‘공동의 재앙’으로 감당해야만 하게 되었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생각하는 인류의 가장 중요한 대안은, 우선 터너의 말대로라면, 우리 동방/한국이 ‘탈코드화된 자본주의적 욕망’의 굴레로부터 새로운 ‘동방 용의 신성한 아우라’를 회복하여, 서방에서 배워온 ‘탈코드화’ 된 자본주의적 욕망 구조로부터 스스로 벗어나는 피나는 노력을 주도해서, ‘탈코드화’ 된 전 세계의 자본주의적 욕망구조를 근원적으로 ‘해체’하는 새로운 정치-경제-사회-문화 패러다임, ‘21세기 호혜-상생의 지구촌 패러다임’을 추구해 나아가야만 한다는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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