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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재발견]느림의 가치, 도시에서 잃은 것을 지역에서 다시 찾다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5년 10월 28일 14시08분

도시는 빠르다. 하루가 시작되기도 전에 시간은 이미 흘러가고, 사람들은 늘 무언가를 서두른다. 하지만 정읍으로 내려와 카페와 숙소를 운영하며 나는 깨달았다. 느림이 결핍이 아니라 회복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내가 있는 곳의 아침은 언제나 느리게 시작된다. 커피가 천천히 추출되는 동안 빛의 온도와 계절의 냄새가 달라진다. 처음엔 이 느림이 답답하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오히려 하루의 리듬이 되었다.

손님들도 어느새 그 리듬에 맞춰 쉬어 간다. 도심에서 쫓기던 마음이 잠시 멈추는 순간, 그 느림은 쉼이 되고, 쉼은 다시 생각의 여백을 만든다.

숙소 역시 같은 시간을 품고 있다. 풀빌라를 찾는 손님들은 대부분 “오랜만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창밖으로 들리는 바람 소리와 물결, 창문을 여는 소리조차 하루의 풍경이 된다.

도시에서는 늘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지만, 이곳에서는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안도가 있다. 그저 머무는 시간 속에서 마음이 비워지고, 그 빈자리에 진짜 쉼이 스며든다.

처음 이곳을 찾은 손님들은 종종 말한다. “여긴 시간이 다르게 흐르네요.”

나는 그 말이 좋다. 시간의 속도는 같지만, 체감의 속도는 다르다. 도시의 삶이 효율을 기준으로 움직인다면, 지역의 삶은 과정 그 자체로 완성된다.

농부는 계절을 기다리고, 커피는 시간을 들여야 향을 낸다.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비로소 밀도가 생긴다.

지역의 느림은 단순한 여유가 아니다. 그것은 관계를 이어주는 속도이기도 하다. 카페에서는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가 오가고, 숙소에서는 낯선 이들이 같은 하늘 아래서 같은 별빛을 바라본다.

빠름보다 ‘머무름’이 사람을 연결한다는 사실을 이곳에서 배웠다. 도시에서는 사라진 인간적인 온기가, 지역의 느린 리듬 안에서는 여전히 살아 있다.

물론 느림은 불편함을 동반한다. 배송은 늦고, 행정은 더디며, 새로운 시도는 오래 걸린다. 하지만 그 속도 덕분에 사람들은 서로를 돕고 기다리는 법을 배운다.

속도는 느려도 관계는 깊어지고, 그 깊이가 지역의 경쟁력이 된다.

도시에는 ‘앞서야 한다’는 압박이 있지만, 지역에는 ‘함께 간다’는 감각이 있다. 느림은 뒤처짐이 아니라, 함께 걸음을 맞추는 속도다. 그래서 나는 이 느린 정읍의 하루를 좋아한다. 시간이 천천히 흘러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역의 재발견은 공간만이 아니라 시간의 회복에서도 시작된다. 빠름이 능력이 된 세상에서 느림은 용기이자 방향이다. 우리는 그 느림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이웃을 마주하며, 지역의 진짜 얼굴을 발견한다./이선율((주)웨스트빈/라하트카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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