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존재의 진실에 다가가기

[책마주보기]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서운정)

기사 작성: 이종근 - 2025년 05월 26일 07시46분

사랑과 자유, 역사와 철학적 사유를 직조한 서사 속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이 소설은 감상적이고 피상적인 아름다움으로 가장한 이데올로기적 감정 메커니즘으로서의 ‘키치’를 호명한다. 키치는 단순한 미적 취향을 넘어 인물들의 내면, 시대상을 비추는 거울로 기능하면서 그들 삶의 진실을 가리는 기제가 된다. 이러한 겉치레의 속성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며 독자에게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두드러지는 형태는 정치적 영역에서 발견되는데 이때 키치는 체제가 내세우는 이상적인 사회의 이미지나 노동자와 혁명의 영웅담은 물론 현실의 모순과 개인의 고통을 은폐하는 포장지로 작용한다. 집단적 감정을 자극하고 비판적인 사고를 마비시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도구로 기능함을 보여준다. 예컨대 작품 속 프란츠가 참여하는 ‘위대한 행진’은 숭고한 목적이라는 포장 아래 개인의 표면적인 만족감과 자기기만으로 귀결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선의로 행하는 행위조차 키치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토마시를 이상화한 테레자의 맹목적인 사랑 역시 키치에 해당된다. 현실의 모습과 괴리된 환상 속에서 테레자는 자기 연민과 감상적 기대라는 틀에 갇혀, 관계의 불균형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감정 이입도 일종의 키치로 해석될 수 있는데, 카레닌(강아지)에 대한 테레자의 애정은 관계의 복잡성을 회피하고 안정을 얻으려는 도피처로 기능한다. 이처럼 키치의 힘은 진실을 은폐하고 인간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동시에 현실에 대한 냉철한 사고를 방해한다.

오늘날 소셜미디어는 사실과 다른 정보가 퍼지기 쉬운 환경으로 쿤데라가 우려한 자기기만적 키치의 면모를 드러낸다. 타인에게 아름다운 모습만을 전시하려는 욕망과 일시적인 인정에 목마른 현대인들은 아름답게 포장한 이미지와 감성적인 문구로 자신을 꾸민다. 이는 자기를 기만하는 것일 뿐 아니라 타인과의 소통을 가로막음으로써 자기소외의 늪에 빠진다. 상업주의 또한 과장된 감정의 확신에 관여한다.

‘힐링’이나‘행복’과 같은 키워드들은 소비를 부추기는 도구가 되어 상품의 본질적인 가치를 가리고 형식적인 만족감만을 제공할 뿐이다. 이러한 이유로 철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인간의 자기기만을 경계해 왔다. 키르케고르는 주체적인 실존을 회피하고 익명의 대중 속에 안주하려는 인간의 속성을 비판했다. 쿤데라의 메시지는 이러한 철학적 통찰과 맞닿아 있으며 진실을 외면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조명한다.

결국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단순히 매혹적인 사랑 이야기나 역사적 비극을 넘어 인간의 삶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키치의 실체를 일깨우고, 그 위험성을 경고하는 철학적 성찰이다.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통한 비판적 시각은 물론 필연과 우연 속에서 기만의 덫인 키치를 인식하고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라는 쿤데라의 메시지가 가볍지 않다.

서운정 작가는

군산 출신으로, 제18회 ‘바다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솔바람소리문학회 회원으로 활동중이다.

■ 이종근 기자의 최근기사

존재의 진실에 다가가기

정하영, 제17회 전북청년미술상 수상

[온누리]대사습과 광대

한벽굴, 전주천을 지나가다

전주세계소리축제 자원활동가‘소리천사’모집

국가유산청의 문화유산돌봄, 재난대응 합동훈련 실시

‘단오맞아 전주 부채 한자리에’

전주담은 드라마 ‘당신의 맛’, 넷플릭스 17개국 1위

임실향교서 국가유산 소유자·관리자 교육

[온누리] 전주 단오

유화로 만나는 부귀영화

Leave a Comment

많이 보는 기사

사전투표 최종 점검하는 선관위 관계자들

조배숙 국민의힘 전북도당위원장 기자회견

진로진학 박람회에서 입시상담 받는 학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