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금요수필]잠깐 내려놓고 벚꽃 구경 어떠세요

김형중

기사 작성: 이종근 - 2024년 03월 21일 14시42분

사람에게서 가장 아름다운 건 ‘웃음’이라고 한다. 우리말에는 얼굴의 표정과 웃음소리에 따라 표현하는 단어가 수두룩하다. 소리 없이 살짝 웃는 눈웃음과 입가에 살포시 피어나는 미소를 비롯해 코웃음(鼻笑), 너털웃음(哄笑), 겉웃음(마음에도 없는 웃음) 등 그리고 상긋한 눈웃음, 부끄러운 듯 배시시한 미소와, 방그레, 빙그레, 해죽해죽, 방글방글, 방실방실, 이루 표현할 수가 없다. ‘웃는 모습’을 열거해본 것은 우리 모두 거칠고 메마른 세상을 살아가면서 웃는 시간을 생각해보자는 의미였다. 발가벗은 몸뚱이로 북풍한설을 이겨낸 문인화가들의 사랑을 받는 사군자(四君子) 중에 으뜸인 매화가 앞장을 서고, 백목련 개나리가 뒤를 따라가면서 잎망울을 밀어 올려 봄을 알리는 전령 노릇을 한다. 하얀꽃으로 피는 백매, 핑크색의 황매, 젊음을 유혹하는 정열의 홍매로 피어나는 매화는 기품과 고결과 인내의 꽃말로 뭇사람들의 사람을 받는다.

지금부터 400여 년 전에 매화를 노래한 상촌(象村申欽-1566~1628)선생의 한시를 옮겨본다. //동천년노항장곡 매일생한불매향 월도천휴여본질 유경백별우신지 (桐千年老恒藏曲梅一生寒不賣香月到千虧餘本質柳經百別又新枝)-오동나무는 천년이 되어도 항상 가락을 간직하고, 매화는 일생동안 추위에 떨면서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그 본질이 남아 있으며, 버들은 백 번을 꺾여도 새 가지가 돋는다.// 동장군이 가다 말고 멈칫거리는 3월의 하순에 고결한 매화의 향기를 그려보았다.

지난주 내내 가장 눈에 뜨이는 건 화사하게 피어가는 봄꽃 중 마지막 주자인 ‘벚꽃’들이 하늘에서 군무(群舞)를 펼쳐 보이는 잔치를 벌였다. 벚꽃을 구경하면서 나는 평소에 꽃을 좋아한다거나, 꽃 이름조차 아는 게 별로 없는 메마른 사람이었음을 새삼 느껴야 했다. 온 국민이 이런저런 세파에 시달리다 보니, 화사하게 피어오르는 벚꽃들을 애타게(?) 그리워했는지도 모른다.

벚나무는 꽃을 피워내는데 걸리는 시간이 일주일 남짓 한꺼번에 활짝 피었다가 아름다움으로 세상을 물들여 놓고, 금세 후드득 바람에 휘날려 날아가 버린다. 봄비라도 만나면 안타깝게도 사람들의 발길에 생을 슬프게 마감해야 한다. 마치 우리들의 삶 가운데 행복한 시간을 느꼈는가 했는데 가버리고 마는 아쉬움을 남기는 촌극과도 흡사하다. 벚꽃은 봄의 기운을 부르는 ‘아름다움과 순수함의 상징이며, 빼어난 미인이나 순결한 사람’을 의미하는 꽃말을 지니고 있다. 나뭇가지에 세 송이 이상 꽃이 피어오르면 개화(開花)시기라 하며, 한 나무의 꽃이 80% 이상 피게 되면 만개(滿開)했다고 한다. 파르스름한 빛은 처음 볼 때는 있는 듯 없는 듯 옅은 빛을 띠다가 며칠 사이 곧 짙은 색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단계가 이게 바로 우리들의 생명을 일깨우는 신록(新綠)이라는 단어이다.

지난 3월 5일, 개구리가 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을 맞이하면서 새봄이 찾아왔다. 봄에 피는 꽃들처럼 우리 모두에게 밝고 맑은 삶이 펼쳐지길 바라면서 올봄에는 잡다한 고민거리를 잠시 내려놓고 한나절쯤 화사한 벚꽃 구경을 해보면 어떨까 한다. 봄이 오는지도 모르고 하루하루 살아가기에 바쁜 가장(家長)들의 가슴에도 화끈하고 고운 벚꽃이 피어나 주길 바란다. 새싹들의 푸르름을 본다는 ‘봄’이라는 단어가 우리 모두의 조그만 소망을 꽃피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김형중 수필가는

4권의 에세이집을 펴냈으며,

현재 전북문학관 운영위원장과

전북예총 부회장으로 문단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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