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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호랑이와 연대, 호모 심비우스를 꿈꾸다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02월 22일 14시35분

“호랑이가 나타났다!”

최근 러시아와 중국의 접경지대를 중심으로 시베리아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고 있다는 뉴스를 들었다. 마을로 내려와 개와 소 등을 잡아먹는 일도 잦아졌고, 심지어는 창문을 부수고 집안까지 들어와 사람을 공격하는 일도 발생했다고 한다. 러시아가 멸종위기종으로 등록된 시베리아 호랑이 보존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면서 개체수가 많이 증가했는데, 그로 인한 부작용이라고 할까. 먹이 경쟁이 그만큼 치열해졌고 호랑이의 활동 영역도 확대되면서 인간의 땅과 야생의 땅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호랑이 서식지였던 야생의 땅은 벌목과 광물 채굴 등 인간 중심의 경제 개발 과정에서 무분별한 삼림 파괴가 자행되고 있다. 숲이 사라지면, 그곳을 터전으로 살아온 곤충부터 토끼, 노루, 멧돼지 같은 동물들이 줄어들게 마련이고, 결국에는 자연생태계의 먹이사슬이 끊어질 수밖에 없다. 자연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인 호랑이의 역시 서식지 감소와 먹이 부족 속에서 생존을 위해 민가의 가축과 사람을 대체 사냥감으로 삼게 되었다. 호랑이에게 당하는 재앙, 이른바 호환(虎患)이 새로운 사회 문제로 대두된 것이다.

호랑이가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던 야생의 땅은 인간에게 점령된 지 오래이다. 이에 지속가능한 지구라는 인류 공동의 과제를 두고, 인간과 동물이 공존·공유하는 자연생태계의 복원을 위한 노력이 세계 도처에서 진행되고 있다. 시베리아 호랑이 보존은 그 한 예이지만, 균형 잡힌 공존·공유의 가능성은 아직 요원한 상태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야생의 호랑이는 언제 어디서든 인간을 공격할 수 있다.

시베리아 호랑이는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백두산 호랑이로 불린다. 친숙한 그 이름만큼이나 우리나라 역시 호환의 기록이 넘쳐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9세기 말까지 호랑이에게 해를 당한 기사가 수백 번 넘게 등장한다. 정치적, 경제적 혼란이 심한 시기일수록 호환은 더욱 빈번해지는데, 관리들의 수탈과 압제, 기후 악화로 인한 기근을 견디다 못한 백성들이 집을 버리고 산으로, 더 깊은 산으로 숨어들었기 때문이다. 산속으로 피해 온 사람들은 산을 태워 경작지를 만들고 메밀, 옥수수, 감자, 조 같은 밭작물을 심었다.

그러나 화전(火田)이 되기 전 그 땅은 호랑이의 서식지였다. 사람들이 피땀으로 일궈 얻은 화전이지만 호랑이 입장에서는 인간에게 빼앗긴 땅인 것이다. 밭을 매던 아버지가 호랑이의 공격을 받고, 물 긷던 어머니가 호랑이에게 죽임을 당하고, 잠결에 소피가 마려워 뒷간에 간 아이가 호랑이에게 물려 가는 일이 흔히 발생했다. 호랑이가 민간에 출몰하여 소와 말, 사람을 잡아먹었다, 강원도에서만 6~7년 동안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수효가 3백이 넘었다, 조선 영조 때는 여름부터 가을까지 호환으로 죽은 자가 140명이었다 등의 기사를 조선왕조실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심심산골에 숨어 사는 화전민들의 피해는 파악조차 안 되었을 테니 당시 호환이 얼마나 자주 그리고 광범위하게 발생했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화전민들에게 호환은 천형처럼 무섭지만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것이었으리라.

그마저 요즘같이 이른 봄은 너나없이 굶주리는 계절. 뉴스를 통해 접하는 오늘날 러시아, 중국의 호환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호랑이의 출몰이 잦았다. 굶주린 호랑이가 인가까지 오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전래동화 같은 이야기가 구전되었을까. 의 등장인물은 모두 배고픈 존재들이다. 배가 고파 마을로 내려온 오랑이는 물론, 떼쓰며 우는 아이와 그 아이를 어르고 달래다 곶감을 내어준 엄마 역시 배고픔은 다르지 않다. 소를 훔치려 한 도둑도 결국은 배고픔이 그 이유이다. 동화로 각색되고 희화화됐지만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문 앞까지 다가온 호랑이의 그림자가 비친다. 방안의 일가족은 공포에 질려 숨을 죽인다. 꼼짝없이 호랑이 밥이 될 상황이다.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도 있듯이, 그래도 희망을 놓지 않는다. 그 희망을 품고 호모 사피엔스를 넘어 ‘호모 심비우스’를 꿈꾼다.

/손시은(문학박사, 말글콘텐츠연구원 이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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