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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사람과 사람 사이, 적정한 거리의 의미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5년 12월 17일 15시34분

회사 동료들과는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의 공간, 한 자리 건너 떨어져 마주 앉을 때가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그들의 일과 삶에 적당히 공감하며 효율적인 협력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입니다. 반면에 가족이나 연인처럼 가까운 이들에게는 조금 더 밀착된 자리가 정겹다고 이야기합니다.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그 거리가 곧 신뢰와 애정의 깊이를 대변합니다.

저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이처럼 관계의 경계를 허무는 순간들을 자주 목격했습니다. 편의점은 손님과 아르바이트생이라는 일시적이고 익명적인 관계로 맺어진 공간입니다. 서로의 사적인 삶에 깊숙이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암묵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익명의 안전거리’가 오히려 마음을 터놓는 놀라운 배경이 되기도 합니다.

어느 날 저녁, 중년 여성 손님 한 분이 다른 손님들이 모두 계산을 마치고 나갈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매장 안에 저와 그녀뿐이었습니다. 그녀는 수줍은 듯 오른손을 내밀며 반짝이는 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이거 나 좋아하는 사람이 처음으로 선물해 준 거예요. 너무 좋아서 계속 자랑하고 싶은데, 다른사람에게는 왠지 쑥스럽더라고요.”

그녀는 목소리를 낮추고는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었습니다. 전혀 알지 못하는 저에게는 부담 없이 그 순수한 기쁨을 공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짧은 순간, 그녀는 아르바이트생이었던 저를 일시적인 ‘감정의 공유자’로 초대해 주었습니다.

또 다른 날에는, 이제 스므살이 된 청년이 말합니다. 그녀는 맥주집에서 저녁 서빙 근무를 하는데 가끔 안부를 물었던 사이라서 조금 편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는 늘 밤늦게 담배를 사기도 했습니다. 그리곤 말했습니다.

“이모. 그거 이제 끊으려고 합니다. 저 미용사 자격증 준비해서 다른 삶을 준비해보려고 합니다. 그동안 좋은 말씀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잴 수 있는 물리적인 미터(m)가 아닙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심리적이고 정서적인 공간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마음속에 '프라이버시'라는 이름의 문을 달고 살지만, 때로는 완전히 낯선 사람에게 그 문을 활짝 열어 보임으로써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경험을 합니다. 가족이나 연인, 동료에게는 지켜야 할 역할과 관계의 무게가 있지만, 익명 속의 타인은 그 모든 무게에서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람 사이의 거리는 안전지대와 같습니다. 가장 가까운 이들과는 신뢰를 바탕으로 '친밀한 안전지대'를 형성하고, 낯선 이들과는 '익명의 안전지대'를 잠시 공유하며 진심을 나눕니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거리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순간의 틈'을 내어주고, 그 틈 사이로 작은 진심들을 교환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최정미(고흥 해맑음농업회사법인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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