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불완전의 완전

[책마주보기]양귀자의 모순(김혜영)

기사 작성: 이종근 - 2025년 10월 27일 08시09분

기쁨은 불행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만남은 이별을 품는다. 양귀자의 '모순'은 바로 이러한 삶의 양가성을 정직하게 드러낸다. 제목이 예고하듯, 기쁨과 슬픔, 만남과 이별, 희망과 절망이 얽히고설킨 관계적 실존으로서 인간 존재의 모순을 파고든다. 삶은 신화 속 인물 야누스처럼 두 얼굴을 하고 있지만 인간은 하나의 얼굴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사랑은 기쁨인 동시에 슬픔이기도 하다는 인식을 드러낸다.

주인공의 시선에 비친 주변 인물들의 삶은 모순의 표본이나 다름없다. 사랑하면서 상실을 겪고,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서도 다시 살아내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모순’이라는 단어가 결코 추상적 개념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것은 곧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일상의 진실이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삶의 조건이다.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난 어머니와 이모의 외모는 닮았으나 그들의 삶은 다르게 펼쳐지는 것도 그러한 의미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머니가 무능한 아버지 대신 시장 좌판에서 가난과 싸우며 치열하게 삶과 대결하는 양상이라면 이모의 삶은 유복하여 걱정이라곤 없는 삶이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듯 이모의 내면은 각박하고 쓸쓸하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된다. 외적 닮음 뒤의 내적 상이성을 보여주는 어머니와 이모의 삶을 통해, 결국 “행복인 줄 알았는데 불행이고, 불행인 줄 알았는데 행복”이라는 역설이 똬리를 튼다. 이러한 이분법적 구도는 다소 단순해 보일 수 있으나, 곱씹을수록 독자가 삶의 ‘두 노선’을 응시하게 하는 장치로 작동된다.

모순을 단순히 불행의 다른 이름으로 보지 않는 작가는 오히려 삶의 모순이야말로 성숙으로 이끄는 힘이라고 말한다. 이십 대의 주인공이 어머니와 이모, 아버지와 이모부, 그리고 주변 인물들의 모순된 삶을 지켜보면서, 불완전한 현실과 화해할 때에야 비로소 삶이 깊어지고 인간이 성장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소설이 주는 가장 큰 울림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성숙이란 완전함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수용하는 용기에서 비롯된다는 메시지다. 이러한 의미를 1990년대 청춘의 시선으로 묘사한 '모순'의 문장은 담백하면서도 강렬하다. 불필요한 장식을 덜어낸 대신 삶의 진실 혹은 그 이면을 통찰함으로써 독자의 마음을 깊게 울린다. 작가는 독자를 위로하지 않는다. 다만 모순을 정면에서 마주 보게 하고, 그 마주 봄 속에서 각자가 자기 삶을 다시 성찰하게 만든다.

이 책이 발표된 후 한 세대가 흐른 지금, 저자가 던지는 물음은 개인의 내적 균열뿐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 모순, 관계의 갈등까지도 포괄한다. 다양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아이러니적 상황을 외면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 삶은 그대로 모순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삶이란 갈등의 방기가 아니라 화해의 과정이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불완전을 통해 성숙한 인간의 길을 제시한다. 단순하면서도 단순하지 않은 '모순'의 근원적 질문이 세대를 건너 현대를 호명하는 이유일 것이다.

김혜영 작가는

2018년 ‘수필과비평’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으며, 현재 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부안학생교육문화관 공감독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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