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월요아침]호남(湖南)은 어디를 말함인가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03월 10일 14시56분

전라도의 또 다른 명칭이 호남이다. 전라도는 1018년(고려 현종9)에 지방제도를 정비하면서 5도 양계로 정비하면서 처음 등장하였다.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의 앞자를 떼어서 전라도라는 명칭이 태동하였다. 고려시대에 전주와 나주는 해상 교통과 교역의 거점이었기에 붙여진 지명이다. 통일신라시대 9주5소경 지방제도에는 전라도에 남원경, 무주, 전주의 행정구역이 있었는데, 고려 현종대에 전라도로 바뀐 것이다. 전주는 통일신라 이후 고려, 조선시대까지 행정의 중심이었지만, 전라남도는 통일신라시대에 무주(광주)가 중심이었다가 고려시대에 나주가 행정 중심지로 부상되었다. 전라도는 행정구역의 명칭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전라도는 호남이라는 호칭과 함께 사용해오고 있다.

그렇다면 호남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반계 유형원(1622-1673)은 『반계수록』에 호남의 지역적 위치를 명시하였다. 호남은 황등제, 벽골제, 눌제 삼호의 남쪽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황등제는 익산 황등면에 조성된 수리시설로서, 최근 발굴 결과 축조 연대가 기원전 3세기경까지 올라간다. 고조선 준왕이 익산 금마에 남래하는 기원전 194년경 시점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 벽골제는 기원후 330년(백제 비류왕 27) 김제 월촌과 부량 사이에 조성된 수리제방시설이다. 벽골제는 신털미산에서 명금봉까지 3,300미터의 수평 제방으로 세계사적인 가치를 가진 수리시설이다. 눌제는 정읍 고부 관청리 일대에 조성된 수리제방인데, 아직 발굴이 이뤄지지 않아 정확한 축조연대는 알 수 없지만, 고대국가에서 조성된 제방으로 추정하고 있다.

황등제, 벽골제, 눌제 삼호(三湖)는 전라북도 옥구, 만경, 김제, 정읍, 고부, 부안, 고창 등 평야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세 호수가 평야지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수리제방 임은 현장답사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그래서 호남에는 평야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호남선 기차에 몸을 실고 가다보면, 익산 미륵산 자락에서 고창 방장산 사이 확 트인 너른 들판(평야)이 펼쳐진다. 이 너른 들판에 황등제, 벽골제, 눌제가 위치하고 있다. 그런데 전남 장성에 들어서면서 들판은 사라진다. 그렇다면 호남의 중심은 전라북도 평야지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호남은 광주 전남지역의 호칭이 되었고, 정작 호남의 본향인 전라북도는 호남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있다. 상투적인 말로 호남을 전라남도에 빼앗겼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사실은 왜곡된 역사인식에서 비롯되었다.

전라남도가 호남의 중심이라고 주장하려면 타당성이 있어야 한다. 예를들면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경계 근처에 커다란 호수가 있어야 한다. 호남은 호수의 남쪽 지역이닌까 지역적 경계를 둘만한 호수가 있어야 하나 전북 고창과 전남 영광 사이에는 호수가 없다. 그럼 왜 전라남도가 호남의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을까. 호남이라는 기록은 조선 전기부터 등장한다. 조선 건국이후 조선왕조가 중국 유학을 국가이념으로 활용하면서 유학자들이 중국의 호남성 지명을 그대로 따와 전라도에 적용시킨 것이다. 중국에는 호남성과 호북성의 경계에 거대한 동정호(洞庭湖)가 위치한다. 이 동정호를 중심으로 남북이 갈린다. 그런데 중국의 동정호는 자연지리적으로 강물이 모여 형성된 호수라면, 한국의 삼호는 인공적으로 축조한 농경수리제방이다. 중국과 한국의 호남지방은 농업의 중심이 분명하다. 하지만 전라남도에는 영광, 함평 아래로 영산강이 바다를 향하여 광대한 입을 벌리고 있을 뿐 너른 들판은 없다.

이제 호남의 중심은 명쾌해졌다. 전라북도 황등제, 벽골제, 눌제 중심의 평야지대가 호남의 중심이다. 그동안 수백년동안 전북도민들은 호남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데 어색하고 주저해왔다. 호남은 전라북도의 정체성이다. 이순신이 임진왜란 당시 웅치전투에서 말했다는 “만약에 호남이 없다면 나라가 없다(若無湖南是無國家)”는 구절의 호남은 호남평야의 지칭이다. 의병들의 군량미가 호남평야에서 나온다는 것을 압축 강조한 것이다. 그래서 호남평야를 곡창지대라고 말한다. 1960년대까지도 우리나라 국세(國稅)의 절반은 호남평야지대에서 나왔다고 할 정도로 전통농업사회에서는 호남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이었다. 그동안 왜곡된 호남론에 전라북도는 호남의 중심에서 변방으로 밀려나 있는 상태다.

이제부터라도 잃어버린 호남문화, 호남정신, 호남학 등을 전북특별자치도에서 되찾고 꽃피우도록 해야 한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승대 학예연구관은 『반계 유형원 새로운 조선을 꿈꾸다』(흐름,2020)에서 호남실학의 계보를 밝혔고, 반계학(磻溪學)을 주창하였다. 반계학이 호남학이다. 이제부터라도 호남문화의 본질이 무엇인지, 호남정신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 호남학 연구를 어떻게 진전시킬 것인지 전북특별자치도와 도민들이 지혜를 모으고 논의와 연구를 본격적으로 전개하기를 희망한다.

전북을 바꾸는 힘! 새전북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새전북신문 기자의 최근기사

[월요아침]호남(湖南)은 어디를 말함인가

[생의 한가운데]K-정신문화: 시련을 넘어 세계의 희망으로

[오늘의 길목]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탄소중립 ESG 경영 지자체가 적극 도입 해야

[사설]부실 잼버리, 책임자 사과 있어야

[사설]민주당 선출직 검증, 구두선 안돼

[기고]프렌치스코 교황의 선종, ‘뇌졸중’, 그 침묵의 경고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닙니다

고주파온열암치료, 암 치료 효과 극대화… 면역력 증진과 전이 방지에 도움

[사설] 지역학 연구에 지원 아끼지 않아야

[새전북이 만난 사람]전국 최초 운수회사 전북고속 105년 황의종 대표이사

[지역의 재발견]새로운 활력이 필요한 시대

[온누리]스피치도 생명이다

Leave a Comment

많이 보는 기사

전주국제영화제 곧 시작합니다

등꽃 탐스럽게 핀 등나무벤치

부처님 자비가 온 세상을 밝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