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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떨켜를 만들 때

소선녀

기사 작성:  이종근 - 2024년 01월 04일 10시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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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쇠자마자 수목원에 갔어요. 겨울을 견디고 있는 나무들이 보고 싶었거든요. 작년에 늦가을에야 겨우 꽃피웠던 진달래가, 꽃눈을 맺었는지도 궁금했고요. 그 녀석이 또 봄을 놓칠까 봐서요. 눈발이 들이치는 수목원은 어느 것 하나 색을 걸치지 않은 빈 몸뚱이네요. 고독한 몸부림에서 서늘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더군요. 모두 힘겹지만 버티고 있었어요. 거무튀튀한 장미 뜨락을 거닐고, 연못의 얼음에 갇혀있는 시든 연잎도 들여다봤지요. 동병상련이랄까, 속엣말을 건넵니다. 춥지, 응?

저런, 실컷 느긋대다가 그만 약속 시간이 다 됐지 뭐예요. 다급해져서 여유는 그곳에 내팽개치고 빠져나옵니다. 그런데 주차장에서 반가운 성을 만났지 뭐예요. ‘어, 같이 수목원에 있었는데 서로 못 봤네.’ 하면서도 설렁설렁 헤어졌어요. 요즘 정신없이 바쁜 일정과 자연에서 찾는 고요, 두 마음을 품고 사네요. 그러다 보니 충돌 사고로 자주 부대껴요. 쫓기듯 가고 있는데 성이 사진 두 장을 보내왔어요. 수목원에서 찍은 것이라고요. 하나는 눈을 이고 있는 납매 꽃송이였어요. 어마, 노란 꽃등이 반짝 켜지는 듯해요. 우중충한 가슴이 환해집니다. “납매 봤어?” “피었어요?” “그럼, 일주일 전에 피었지. 그거 보러 갔어”

으이구, 그렇게 얼쩡거렸으면서도 못 보다니. 어둡기 전에 얼른 가서 봐야지, 서둘러 일을 마치고 다시 수목원에 왔어요. 옳거니, 화장실 뒤편에 아홉 그루가 양쪽으로 서서 꽃을 피웠군요. 그냥 지나쳤던 길이지요. 그런데 어째요. 누렇게 바랜 잎을 떨구지 못하고, 그대로 매달고 있어요. 꽃이 가려져 있군요. 지나간 시절, 지나간 사람을 아직도 붙잡고 있는 모습 같아 안쓰러웠어요. 어쨌거나 꽃이 지고 나면 새잎이 나올 텐데 그땐 비켜주겠지만요. ‘이제 젖을 떼고 홀로 서렴’ 하고 타일러요. 저 자신에게 하는 소리에요. 건강한 관계라면 떨켜 만들 때를 알아야지. 그 묵은 한 잎에, 성이 보내준 두 번째 사진 속의 매미 거푸집이 붙어 있어요. 등 뒤쪽이 뻥 뚫린 채, 남겨진 마음이 서럽습니다. 탈피하고 날아간 녀석은 목놓아 살다 갔겠지요. 사진을 찍어 성에게 답장을 보냅니다. 이제 그만 놓아주고 싶다고. 쉽게 떠나지 못하고 몇 번이나 맴돕니다. 노란 꽃과 은근슬쩍 눈을 맞춥니다. 납매는 음력 섣달을 뜻하는 납(臘)에 매화를 뜻하는 매(梅)를 합친 말입니다. 추위를 뚫고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이라서 '한객(寒客)'이라고도 불린다지요. 새잎이 나오기 전에, 손톱만 한 꽃을 송골송골 피웁니다. 꽁꽁 언 겨울 정원에서 연한 꽃을 잇달아 피워내는 납매는, 생존 전략을 가졌어요. 그것은 꽃이 핀 것을 알아채게 할 만큼 강하고 달콤한 향기랍니다. 추위가 강할수록 짙은 향기를 내뿜습니다. 모양이나 색깔이 아니라 향기로 안간힘 쓰는 것이지요. 소박한 겉모습 안에 갖춘, 눈에 띄지 않는 강인함이 탐납니다. 드러내기 전의 마음을 맡아주기는커녕, 와있는 봄도 눈여겨보지 못한 얼치기입니다. 그래도 묵은 겨울 보내고 새봄을 품어봅니다.



소선녀 수필가는



2002 시와 산문 등단

작품집 '봄이면 밑둥에서 새순을 낸다', '푸나무의 노래', '두베가 내게 올 무렵'

지평선문학상, 하림예술상, 산호문학상, 신무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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