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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화선의 매화 향기

김스미의 미술산책〈52〉 장승업 ‘홍백매도 10폭 병풍’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매화 판타지에 소망을
전광석화처럼 날랜 운필과 자유분방한 구도


기사 작성:  이종근 - 2024년 01월 03일 12시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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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백매도 10폭 병풍 부분〉, 1890년 무렵, 종이에 수묵담채, 90×434cm, 리움미술관



〈호취도 부분〉, 19세기 후반, 종이에 수묵담채, 135.4×55.4cm, 호암미술관



은은한 매화 향기가 생각나는 계절이다. 눈 속에 홀로 소리쳐 핀다. 동짓달 여드렛날, ‘매화 화분에 물을 주라’ 했던 다산 정약용의 마지막도 매화 생각이었다. 매화는 선비의 정신 수양 기본 과목이다. 엄동설한을 견디고 피는 매화처럼 꿈이 현실이 되는 무의식적 소망이 담긴다. 그림은 작가의 이상을 담은 그릇이다.

조선 화류계 4대 천왕,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과 함께 천재 반열에 오른 오원 장승업(1843-1897)의 매화 이야기다. 작품 ‘홍백매도 10폭 병풍’을 보노라면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매화 판타지에 압도된다. 10년 묵은 체증이 일거에 내려가듯 시원하다. 웅장하고 화려한 매화다. 매화에 묻혀 정신이 혼미해진다. 전광석화처럼 날랜 운필과 자유분방한 구도는 오원만의 독창성이다. 장승업은 ‘매화 그림은 이렇게 그려다’라고 큰소리로 외친다. 그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종이 가게에서 더부살이하며 어깨너머로 그림을 배운다. 글자를 몰라 화제도 쓰지 못하고 화원이 되려 하지도 않았다. 그가 유숙(1823-1873)의 눈에 띄어 그림을 배웠다 하나 이도 확실치 않다. 왕의 명령이라도 내키지 않으면 그림을 그리지 않은 당찬 기질의 화가다. 술을 좋아한 그의 주체할 수 없는 예술적 기질을 취화선이라 부른다. 장승업은 산수와 영모, 절지와 기명, 화훼 등 못 그리는 것이 없었다. 특히 동양 정물화의 일종인 고대 쇠그릇과 문방제구들을 그려 유행시킨다. 푸르고 물기가 촉촉한 먹색을 즐긴다. 먹이 잘 스미는 선지를 쓰고, 양모 붓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자기만의 기법을 전파한다. 근대로 이어지는 조선 후기 화단의 최고봉이다. 그런데도 오원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평론가들은 제도권 화가가 아니라는 점과 그의 작품에 보이는 중국풍 때문에 시대정신을 의심한다. 그의 산수화는 남북종화(南北宗畵) 두 화풍이 다 있다. 아마도 당시 중국 원명 시대 명화를 보면서 그림을 독학했나 보다. 타고난 천재는 그냥 그리면 그림이다. 그가 좀 더 확실한 독자적인 화풍을 만들었다면 고흐에 버금가는 세계적인 스타였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작품 ‘호취도’는 진한 먹물로 거칠게 그려, 서슬이 퍼런 독수리의 기상이 강렬하다. 발톱을 세우고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쏘아본다. 호방한 성격의 오원 자신을 표현한 듯하다. 꺾어지고 휘어진 나뭇가지도 마찬가지다. 빠르고 날렵하게 그린 크고 작은 잎들이 그의 붓끝에서 춤을 춘다. 고목의 태점들도 음악처럼 리드미컬하다. 수묵화의 태점은 화가의 예술적 감각을 일거에 보여주는 중요한 테크닉이다. 은은하고 세련된 불세출의 신필이다. 지면상 생략한 아래 독수리는 담담하게 세상 달관한 표정으로 먼 곳을 응시한다. 상하 대비의 구도가 극적이다. 왼편 화제(畫題)는 조선 말기 서화가 정학교(1832-1914)의 글씨다. 오원의 마음을 잘 아는 듯 필체도 변화무쌍하고 자유롭다. ‘땅 넓고 산 드높아 장한 의기 더해 주고/ 마른 잎에 가을 풀 소리 정신이 새롭구나’ 독수리와 고목이 쌍두마차처럼 완벽한 하모니를 이룬다. 경이로운 필력의 오원의 홍백매도는, 휘몰아치는 기상이 독수리를 닮았다. 자유로운 그는 작품 안에서 매화였다가 독수리였다. 오원의 화풍은 근대 한국화의 선구자, 안중식과 조석진으로 이어진다.

2024 신년이다. 늘 새롭게 다짐하는 독수리의 장쾌한 기상 같은 각오로 아침을 맞는다. 목표를 세우는 것도 의미 있지만, 새로 일을 벌이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지난해 하던 일을 꼼꼼하게 열심히 하면 된다./화가 김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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