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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발걸음]“거시기”에 대해서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5년 06월 09일 14시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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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말한다. 거시기는 귀신도 모른다. “거시기”, 이 말이 언제부터 사용했는지 알 수 없다. 조선 중엽 정읍시 칠보면(조선시대 당시로 태인현) 출신의 저명한 학자 송세림(宋世琳: 1479~1519)이 지은 책 『어면순(禦眠楯)』에 이 말이 실려 전한다. 이 책에는 짤막한 소담(笑談)들 여러 편이 실려 있다. 오늘날로 보자면 우스개 유머집이다. 한문(漢文)으로 쓰이고 토만 한글로 달았다.

82편 가운데 이 있다. 그곳에 “거시기(渠是其)”라는 단어가 나온다. “모로쇠(毛老金)”라는 말도 나온다. 모로쇠전이란 제목은 성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 곧 모로쇠의 이야기(傳)란 뜻이다. 모로쇠라는 인물도 그렇거니와 거시기라는 단어도 역시 우습다.

이 이야기는 다소 유머러스하다. 서두(序頭)는 “有名毛老金者 渠是其 村夫也(모로쇠라고 하는 자가 있으니, 그는 거시기에 사는 시골 사람이다)”로 시작된다.

이 한 문장 안에 “거시기”와 “모로쇠”란 말이 들어 있다. 그렇다면 과연 “거시기”는 무엇이며 모로쇠는 무엇인가. 여기서 거시기는 ‘어딘지 모르는 어떤 곳’으로서의 거시기(渠是其)이다. 재미있게도 작자 송세림은 거시기에 대해 친절하게 작은 글씨로 주(註: footnote)를 달았다. 그 주(註)에 이르기를 “渠是其 方言東西未定之辭也”(거시기는 사투리로 그것이 이것(東)인지 저것(西)인지 정해지지 않은 말이다.)”라고 하였다. 곧, “정해지지 않아서 알 수 없는 말(東西未定之辭)”이라는 뜻이다. 거시기는 원래 태인 지방의 사투리로 그것이 무엇인지 정해지지 않은 때 쓰는 말이다. 모로쇠는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척하는 행태’에 대한 말이다. 이 말들이 언제부터 전라도 전역으로 확대되고, 더 나아가서 전국적으로 전파되었는지 필자가 과문한 탓으로 자세히 알지 못한다. 다만 송세림 선생이 살았던 서기 1500년 전부터 사용된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그 이전부터 쓰였을 수도 있으나, 아직 그에 대한 고문헌(古文獻) 기록에서 발견하지 못하여 자세히 알 수 없다. 적어도 지금으로부터 500년 이전부터 거시기와 모로쇠라는 말이 쓰인 것은 사실이다. 참고로 거시기(渠是其)나 모로쇠(毛老金)는 이두(吏讀) 표기이다. 이두는 삼국시대로부터 시작하여 일제강점기까지 쓰인 우리 글이다. 송세림은 송연손(宋演孫)의 아들로 태인에서 태어나 장원급제하였다. 그는 학문과 인품이 출중하였다. 송연손과 송세림 부자(父子)는 조선 중종 임금을 가르친 왕자사부(王子師傅)이다. 송세림은 갑자사화 이후 벼슬에 환멸을 느껴 태인으로 낙향해서도 고향 후학들에게 학문을 전수하였다. 훗날 무성서원에 배향되었다.

‘잠을 막아내는 방패’라는 뜻을 지닌 어면순(禦眠楯)이란 책명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송세림은 제자들이 공부하다가 졸리면 그 졸림을 쫓는 방편으로 우스개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모양이다. 옛날 스승님들도 여름에 제자들이 공부하다가 졸면 우스개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였다. 제자들에게 몰려오는 잠을 쫓아 주려 한 것이다. 그 같은 제자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송세림이 1510년 전후로 『어면순』을 편찬하고, 그의 아우 이조판서 송세형이 1530년 무렵 당시에 이를 책으로 간행하였다. 수록된 이야기는 총 82화이다.

걱정이다. 12.3 비상계엄을 일으킨 괴수와 주범들이 법정에서 ‘모로쇠’로 일관하거나 ‘거시기’라고 얼버무려 그들의 추악한 죄상을 숨길까 두렵다. 진실로 원하건대, 우리나라 경찰, 검사, 판사들이 탁월한 능력으로 진상을 조사하고 죄상을 낱낱이 파헤쳐 털끝만큼도 의혹이 없이 처단해 주기를 갈망한다. 언론도 정론직필로 거짓말을 일삼는 대역죄인들의 잘못을 추상같이 밝히는 데에 일조해야 한다. 쾌도난마(快刀亂麻), 죄상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지면, 우리 국민의 마음은 그야말로 후련할 것이다. /유종국 전 전북과학대학교 교수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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