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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이야기 꽃]차 한잔은 사회자본의 다리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5년 04월 02일 15시06분

도시는 숨 가쁘다. 빌딩 숲 사이를 가르며 달리는 자동차, 촘촘한 일정표에 갇힌 사람들, 소음과 정보의 파도 속에서 흔들리는 일상으로 반복된다. 도시인들은 생존 다툼 속에서 관계의 여유, 정서의 교류, 신뢰의 형성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맞닥뜨리는 경제적 압박, 고립된 인간관계에서 불안하다. 예측 불가능한 뉴스와 디지털 피로는 ‘다층적 충격’을 만들어낸다. 그리고는 사람들의 내면을 조용히 마모시킨다. 미래를 뿌옇게 만들고 있다는 불안이 더 두렵다.

이런 세상살이에 견디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사회자본’이 그 무엇보다 절실하다. 사회자본은 구성원 간 신뢰, 상호 호혜성,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사회의 안정성과 회복력을 키우는 힘이다. 단절되고 불확실한 충격이 쓰나미처럼 다가오는 요즘이다. 사회자본은 같은 시대에 서로를 믿고 함께 걸어갈 수 있는 디딤돌이 된다. 그런데 이것이 경제적 활동으로 생산되거나 법으로 강제되지 않는다는 점이 안타깝다. 사회적 자본은 오직 ‘작은 만남’과 ‘진심의 교환’ 속에서 차곡차곡 쌓인다.

그 시작이 바로 차 한잔일 수 있다.

도시인들은 하루에도 커피와 차를 끼고 살지만, 진정한 ‘차 한잔’은 속도와 효율의 언어에서 벗어나 사람을 중심에 두는 행위다. 누군가와 찻잔을 사이에 두고 앉는 그 순간, 우리는 상대의 얼굴을 마주하고, 시선을 맞춘다. 오가는 말 너머에서 잔잔히 흐르는 숨결을 듣는다. 이 짧은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한다. 그리고 마침내 마음속으로 이어지는 연결점을 조용히 만들어간다.

도시인은 늘 시간에 쫓기며 ‘관계’를 구입하듯 맺고 소비하듯 풀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차 한잔의 시간은 사뭇 다르다. 그것은 관계의 소비가 아니라 신뢰의 예우이다.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섯불리 판단하지 않는다. 잠시 마음을 내어주는 이 찻잔 속에서 마음의 울림을 느낀다. 이렇게 해서 반복되는 차 한잔의 시간들이 작은 신뢰를 씨앗 삼아 더 넓은 사회적 신뢰망으로 자라나지 않겠는가.

익명성이 판치는 도시의 삶에서 불확실성, 과잉 자극을 멀찌감치 밀어내는 차 한잔은 예측 가능성의 회복을 당겨준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사람과 마시는 차 한잔도 불확실한 삶 속에서 작지만 안정된 리듬을 만든다. 그리고 이 리듬은 나를 감싸고 있는 세계가 아직 신뢰할 만하다는 감각을 되살려 준다. 도시인들 생활 속 차의 향기는 ‘나’의 안전을 넘어, ‘우리’의 연결로 확장된다.

또한 차 한잔은 계층, 나이, 언어를 넘는 공통의 예법을 새겨준다. 그 자리에는 누구나 초대할 수 있고, 누구나 응할 수 있어 툭 트인 소통의 장이 된다. 그 안에서 정이 자연스럽게 흐르고, 갈등은 차분히 식는다. 이처럼 차는 일상 속에서 사회자본을 양생하는 문화적 장치로 기능한다.

차 한잔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것은 현대 도시인들의 장막 건너편에 도사리던 고립을 벗겨낸다. 약속된 땅으로 이어가는 징검다리이다. 신뢰와 관계를 새롭게 짓는 사회적 실천이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복합적 스트레스와 감정의 조각들을 저절로 풀어준다. 그것을 조용히 감싸안고 푸는 방식은 거창한 구조변화라기 보다, 한 사람과 또 한 사람의 따뜻한 연결에서 시작될 수 있다.

조용히 차 한잔을 건네보자. 말없이도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그 여백이 아름답다. 그 속에서, 우리 사회는 조금 더 예측가능하고, 정다운 방향으로 걸음을 내딛게 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같이 사는 사회’로, ‘신뢰와 화평의 문화’로 돌아갈 수 있다. 차 한잔 권해보자. 차 한잔을 권했을 뿐인데 그 작은 행동이 당신의 삶과 우리 사회에 얼마나 깊은 파문을 일으킬 수 있는지,,,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신뢰의 향기 속에서 우리는 더 예측가능한, 더 정다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런 작은 일들이 쌓이고 겹치며, 신뢰의 씨앗이 자라고 사회자본의 숲이 우거진다. 윤활유처럼 사회 시스템 전체를 부드럽게 작동하게 할 것이다.

/이흥재(한국전통문화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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