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금요수필]‘덩덩 구’의 사연

정남숙

기사 작성: 이종근 - 2024년 11월 07일 09시38분

‘덩덩 구’는 ‘갈매기 구(鷗)’를 이르는 말이다. 어느 사전이나 옥편을 찾아봐도 ‘덩덩 구’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 해도 나는 그 어느 곳에서든, ‘덩덩 구가’, ‘갈매기 구’ 자와 동음이라는 내용이 분명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아니 나 같이 어른들에게 듣고 배웠으면 믿지 않고 배길 수 없을 것이다.

“언제부터 배웠어요? 어떻게 공부했어요?”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한자 한문을 조금 더 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내 대답은 궁하기 짝이 없다. 서당에서 ‘하늘 천 따지’ 하고 천자문을 배워 본 적도 없고, 나를 가르쳐준 스승도 없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온 것뿐이다. 나는 철들기 이전 서너 살 무렵부터 할아버지에게서 글을 배운 것 같다. 아니 배운 것이 아니다. 할아버지, 아버지의 얘기를 듣고 자랐을 뿐이다. 내가 아는 한자는 아주 특별하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이 우리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기 쉽게 비유로 말씀하시듯, 할아버지 아버지도 우리 주변에 있는 것을 활용해서 글을 알려 주셨다. 갈고리, 뚫다, 모으다, 많다, 꿰다, 쌓다. 작다, 넘다 등, 주변에 있는 도구의 용도와 생김새를 보아, 나도 모르게 이해하며 한자를 익혔다.

그런 할아버지가 ‘덩덩 구’ 얘기를 들려주셨으니 나는 철석같이 믿고 있다. 덩덩 구 이야기인즉, 옛날 어느 임금이 암행을 나섰다가 날이 저물어 길을 잃었다. 멀리 작은 불빛을 보고 찾아가 보니 작은 초가집에서 글 읽는 소리가 들렸다. 주인을 찾아 길잃은 사연은 말하고 하룻밤 묵기를 청했다. 맘씨 좋은 선비는 흔쾌히 응낙하고 그대로 뒤돌아 앉아 글을 읽는다. 선비는 수년 동안 과거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아이들은 많고 집안은 가난하여, 낮에는 바닷가에서 조개를 주워, 마누라가 이웃에 팔아 입에 풀칠하며 살고 있어, 과거시험에 매번 낙방했다고 한다.

임금은 선비에게 묻는다. 바닷가에서 자주 보는 게 무엇인가. 선비는 주저 없이 갈매기가 친구 해 주죠. 그러자 임금은 커다란 종이를 꺼내 ‘갈매기 구’ 자를 써주며, 이번 과거시험에 도움이 될걸세 하며 떠났다. 며칠 후, 선비가 과거장에 나타났다. 시험 주제가 내 걸였다. 밤새워 알려 줬건만 선비는 모르고 있다. 시험문제가 걸린 병풍에 마침 갈매기 그림이 있었다. 임금은 갈매기를 주먹으로 덩덩 치면서 이것이 무엇인가? 이때 선비의 머리를 스치며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벌떡 일어나 ‘그 글자는 ’덩덩 구‘ 이옵니다.’ 그러자 임금이 깜짝 놀라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는가, 이 자는 ‘갈매기 구’ 자인데 나만이 아는 ‘덩덩 구’라 대답하니, 이런 귀한 사람을 만난 것은 짐의 영광일세, 이후로 ‘갈매기 구’ 자를 ‘덩덩 구‘ 자로 같이 쓰도록 하라.” 했다는 얘기니 덩덩 구는 갈매기 구가 확실하다고 믿고 있다.

내게 묻는 사람 중에는 저 사람도 했는데 ‘나도 한번?’ 도전을 꿈꾸는 사람도 있고, 내가 터득한 비법을 아이들에게 알려주어 쉽게 한자를 가르쳐보려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버릇처럼 습관적으로 한자를 쓰고 한문을 배우고 익혔노라 하면, 사람들은 곧이듣질 않는다. 안 믿겨도 내 한자 실력은 우리나라가 인정하는 공인(公認)이다

정남숙 수필가는

'대한문학’ 수필 등단

수필집: ‘노을을 닮고 싶다’ ‘난 아직도 꿈을 꾼다', ‘역사의 마당에서 전통이랑 놀아보자’

'대한문학 작가상’, 한국문인협회 선정 ‘올해의 수필인 상’ 수상

전북문인협회, 전북수필, 행촌수필, 은빛수필 회원. 국립전주박물관, 전주기독교역사기념관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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