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온누리] 만 원의 행복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08월 19일 15시29분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피천득 선생의 인연이라는 구절처럼 인연 따라 세상에 와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인 타생지연(他生之緣)의 만남이 오래가면 곧 운명이 된다.

우리 사는 동안 많은 사람과의 인연이 흩어지기도 하였고, 모이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또 다른 인연과 맺어지기를 반복하다 결국에는 죽음을 맞이하고, 그곳에서 다시 새로운 인연이 시작되니 사람의 인연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며칠 전에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에 위치한 호스피스 완화 의료 전문기관 정토마을 자재병원에 다녀왔다. 능행 원장 스님의 거절할 수 없는 눈빛으로 운영위원회장이라는 소임을 맡게 되었고, 무슨 인연이기에 전라북도 사람이 울산광역시에 있는 단체에서 이런 역할을 하게 되는지 책임감과 함께 실타래처럼 엮여져 있는 인과의 무게를 느끼게 되었다.

요양병원보다 조금 낯선 호스피스 완화의료 기관은 말기 암 환자의 육체적 고통을 덜어주고, 정신적 안정을 찾아 주며, 두렵지 않도록 손잡아 주어 임종 순간까지 함께하는 곳이다.

삶의 끝자락에서 힘들게 죽어가는 인생이 아닌 생의 마지막 시간을 준비하게 하는 존엄한 공간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숭고한 시설이 있기에 의사의 말기 진단을 통해 현대 의학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 당사자나 가족은 현명한 결정을 해야 한다.

생사(生死)는 내 의지대로 올 수도 없고, 갈 수 있는 곳도 아니다. 하지만 가는 과정은 선택할 수 있기에, 이생의 시간을 얼마 남겨 놓지 않고 호스피스 병원 서비스를 찾는 일은 죽음을 앞둔 분에게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6개월이나 1년 전부터 통증 완화 및 증상 조절을 통해 인연 따라 만났던 환자와 가족의 삶, 다시 인연 따라 돌아가고 헤어질 수 있는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시간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인연인 줄 알지 못하고, 현명한 사람은 옷자락만 스쳐도 인연을 살릴 줄 안다.’는 신희상 시인의 글귀처럼 오고 가는 마지막 인연의 순간을 살릴 줄 아는 인연이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인연이 아닐까?

그 인연의 매듭을 풀어주는 정토마을 자재병원은 특정 종교인만을 위한 시설이 아니며, 해당하는 모든 환자를 대상으로 국가 보조금 외에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소중한 사람과 의미 있는 이별을 만들어 주는 이곳에 후원의 마음을 전해주는 일 또한 살아생전에 좋은 인연 짓고 가는 일이 아닌가 싶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그분들에게 우리의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고석헌(상상에너지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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