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온누리] 레이디 퍼스트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13.03.03 17:26

‘레이디 퍼스트(LadyFirst)’는 여성을 먼저 배려한다는 의미로 널리 통용된다.

‘여성 먼저’ 라는 뜻의 이 말은 언뜻 달콤하게 여성들의 귀에 와 닿는다. 여자가 약하니까 무얼 하든 먼저 배려하라는 뜻이라던가. 그러나 이 단어가 2차 세계 대전 당시, 전장에서 총알받이가 필요할 때 여자를 먼저 보낸다는 의미로 쓰인 단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총알받이는 전쟁 시에 총알을 막으려고 맨 앞에 내세우는 사람이나 군대를 말한다. 적의 화력을 육탄방어하는 것, 상대방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병사를 버림돌로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이때 여자를 먼저 내보내라는 뜻으로 레이디 퍼스트라는 말이 사용된 것이다. 명분은 전장에서 쓸모가 있는 남자를 아낀다는 것이었다.

‘레이디 퍼스트’라는 구호아래 서구의 남자들이 여자를 감싸고 깍듯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고 무척 부러워하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헐리웃 영화를 보면, 서구의 남자들은 백마 탄 왕자처럼 여자들에게 싹싹했던 기억이 있다. 자신의 아내나 애인은 물론이고 서로 가까운 사이라면, 여자가 차에서 내릴 때 문을 열어준다든지 앉을 수 있도록 의자를 꺼내준다든지 옷을 입고 벗을 때 꼭 여자를 도왔다.

달콤한 몸짓의 영화 속 남자들을 보면서 우리는 촉촉한 몸짓은커녕, 말 한마디 곰살궂게 할 줄 몰랐던 우리네 남정네들에게 울화통을 터뜨렸다. 여자를 업신여길 뿐 제대로 대할 줄 모른다고 생각했고 주위 남자들이 못마땅한 만큼 서구의 영화 속 남자들을 더욱 기억했다.

‘레이디퍼스트’를 액면 그대로 받아준다 하자. 겉으로 보이는 다정함을 한 꺼풀 뒤집으면, 여자를 남자와 똑같은 주체로 여기지 않는 무의식이 깔려 있음을 알게 된다. 또한 ‘레이디 퍼스트’를 알짜로 행사하는 권한은 언제나 남자에게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슬기로운 여자라면, ‘레이디 퍼스트’란 말은 여자가 그 주체가 아님의 반증이라는 것쯤 알아야 한다.

거기다가 전쟁중에 지뢰밭을 지날 때 여성을 먼저 지나가게 해서 전쟁에 쓸모가 있는 남성을 아끼라는 말로 '여성 먼저'가 유래되었다는 걸 알면 한참 어처구니가 없다. /전우연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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