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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박배엽, 박하연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2년 02월 13일 13시33분

세월이 그야말로 쏜 살이다. 시인 박배엽을 화장하고 모악산에 재를 뿌린 게 엊그제 같은데 그새 18년이다. 그는 2004년 2월8일 새벽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지난주가 그의 기일이었다. 남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키로 거리를 활보하던 그의 영상이 아직도 동문사거리며 팔달로 등 전주 시내 구도심에 박혀있는 듯하다.

시인은 시편 뿐 아니라 시심을 남긴다. 박배엽은 전주의 시심이었다. 이웃을 사랑하고 세상의 부정의에 분노하고 불공평에 잠 이루지 못했다. 고등학교 졸업장이 전부였지만 어느 박사보다도 압도적인 독서를 했고 뜨거운 가슴으로 웅변과 달변을 쏟아내던 거리의 지식인이었다. 여름에도 검은 외투를 입었는데 외투 깃엔 빨간 장미꽃 한 송이를 꽂기도 했다. 한 번은 전주 시내 중앙동에서 우연히 마주친 친구 어머니에게 그 장미꽃을 드리며 “어머니, 사랑합니다!”고 말해 그 분을 소스라치게 했다. 그의 짧은 머리는 이른바 ‘김수영 스타일’이었다. 민음사에서 나온 문고본에 실린 김수영 시인 사진을 이발사에게 주면서 “이 사람과 똑같이 깎아달라”고 한 다음 친구들에게 으스대며 물었다. “나, 김수영 닮았지?” 오밤중 두 세시에 울리는 전화는 모두 박배엽의 전화였다. 내가 받건, 처가 받건 그는 대뜸 “사랑한다”고 말하며 단잠 이상의 것을 주었다.

그가 1980년대 말 운영하던 전북대 앞 ‘새날서점’에 숱한 친구, 후배, 문도가 드나들었는데 시인 안도현도 그중 하나였다. 안도현은 박배엽을 “졸업장을 위해 ‘대학 따위’ 다니는 걸 그는 혐오했다. 숱하게 시국관련 성명서를 쓰던 시인, 불완전한 독서광, 질리도록 토론을 즐긴 카페 혁명가, 오토바이 라이더, 한심한 끽연가, 지리산에 미친 산꾼”이라고 썼다. 아마 가장 가까운 표현일 것이다.

박배엽의 아들 박하연이 시집 ‘가람 흐르듯’을 냈다.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영정 앞을 뛰어다니던 세 살 짜리가 지금 스물 한 살, 서울의 한 대학 건축학과 2학년이다. 건축학도의 시집이라니, 더구나 그가 시인의 아들이라니 대견하고 기쁘다. 박배엽이 생전 남긴 시는 수 십 편에 불과한데 그 아쉬움을 아들이 단박에 풀었다. ‘가람 흐르듯’엔 시 90여 편이 실려있다. 모두 지난해 여름 반년 새 쓴 것이다. 시를 살펴보니 시재(詩才)가 분명하다. 박배엽이 저 세상에서 미소지을 듯하다. “어찌 그리 예쁜가 싶습니다. / 말이 고운 음을 타고 퍼지는 것이 // 훗날 제 글도 음과 어울리면 / 예뻐질까 싶습니다”(박하연 시, ‘노래’ 중). 세상에 아름다운 게 시인의 노래다. 더구나 그들이 부자(父子)임에랴. /임용진(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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