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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창] 양란의 영웅들을 배출한 김제(안위장군 편)

명량에서의 패배는 곧 국가의 멸망인 상황에서 나라를 구한 1등공신이 바로 안위장군

기사 작성:  주윤미
- 2020년 02월 27일 13시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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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를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서 조선전기와 후기를 나누는 기점이 될 정도로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와 문화적 측면에서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게 했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특히 임진왜란은 나라의 수장이었던 선조가 일찌감치 경복궁을 버리고 평양으로 달아났으며, 단 두달만에 전국토가 짓밟히고 이에 선조는 압록강변인 의주까지 또다시 도망치는 신세가 되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했던 상황에서 온몸을 불사르며 막아내었던 사람들은 다름아닌 말단 군관이나, 사명감이 높았던 지방관, 그리고 가족과 이웃을 지키키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민중들로 구성된 의병들이었다.

유난히도 김제에는 이러한 양란에 있어서 주목할 만한 인물들이 많은데 그중 대표적인 인물 다섯 분만 5회에 걸쳐 시리즈로 소개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소개할 인물은 명량해전의 영웅 안위장군을 들 수 있다. 영화 ‘명량’에서도 비교적 비중있는 인물로 다뤄졌던 안위장군은 사실 왕권중심의 정치체제 속에서 혁신적인 민주주의를 주장하다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했던 정여립의 5촌 조카이다. 이러한 이유로 ‘조선 최대의 피바람’이라 일컬어지는 기축옥사의 희생양이 되었는데, 다행히 처형을 면하여 용천에 유배되었다가 탈출하여, 어느 병사의 막하에 배속되었다가 뛰어난 무예실력에 백사 이항복의 눈에 들어 사면되었던 인물이다. 각종 전장에서 관운장처럼 적진에 뛰어들어 적들을 무자르듯 베어나가는 뛰어난 무예실력을 지녔던 안위는, 무과를 치룸에 있어서도 우수한 실력으로 급제하여 결국 거제현령으로 제수됨과 동시에 당항포 해전 등에서 자신의 능력을 맘껏 펼치게 될 계기가 마련되었으나, 해군의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전 해군이 총동원하였던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이 이끄는 함대가 대패하고, 배설장군이 미리 도망칠 때 버리고 간 12척만 남겨지게 된 상황에서, 다시 한번 일본해군이 전력을 가다듬어 총공격이 감행된다면 국가의 멸망은 불을 보듯 뻔한 최악의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일본이 수군을 정비하여 총공격을 감행하는 움직임이 일게 되었는데, 이것이 이른바 ‘명량해전’의 서막이다. 연전연승의 신화를 만들었던 이순신에게 쏠려있는 관심이 거슬렸던 신하들의 각종 모함으로 결국 사형을 선고받았던 이순신은 백의종군 하게 되어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되었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이순신과 그를 따르는 군사들에게 전장터에서의 사형을 내린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천하의 이순신이라 할지라도 12척의 배로 133척의 기세를 물리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난중일기에는 “ 여러 장수들이 적은 군사로써 많은 적들을 맞아 싸우는 형세임을 알고 돌아서 피할궁리만 했다. 우수사 김억추가 탄 배는 물러나 아득히 먼 곳에 있었다.”라고 기록해 놓았다.

이에 안위또한 끝이 보이지 않는 일본함대를 보며 함부로 다가서질 못한 상황에서 이순신이 먼저 지자총통, 현자총통등 각종 총통을 쏘아대며 돌진하였는데, 결국 적함대속에 겹겹이 쌓인 채 포위되는 상황까지 이르렀는데, 이때 뒤에 있던 장수들은 서로의 얼굴만을 바라보며 리더를 구하러 가길 머뭇거리고 있던 상황에서 거제현령 안위와 중군장 첨사 김응함이 포위진을 뚫고 적선들을 휘저어 놓기 시작하자, 백병전에 강했던 일본수군의 군함이 안위의 군함으로 집중되기에 이르렀다. 이때 일본수군 지휘관인 구루지마 미치후사가 안위를 공격하다가 되려 탑승하고 있던 군함이 파괴되어 물에 빠지게 되었고, 적장을 끌어올린 이순신은 구루지마의 목을 기함에 높이 걸어놓아 조선수군의 사기가 급격히 올라간 반면, 일본 수군의 사기가 급격히 꺾여 반격의 기회를 만들게 된 것이다. 오후가 되자 해류의 방향이 바뀌어 지휘관을 잃은 일본수군은 역조가 된 해류 때문에 앞으로 나가기는커녕 좁은 해역에 너무 많은 배가 들어서다 보니, 되돌아가는 것도 쉽지가 않아 일본 군함들은 마구 엉키게 되어 133척의 대함대를 상대로 포격전을 벌여 일본수군을 크게 물리친 해전이 바로 명량해전이다.

일본군의 수장을 물에 빠뜨려 전세를 뒤집은 큰 공로를 세운 안위는 수군절도사에 발탁되었으며, 이순신의 진언으로 국왕으로부터 무경칠서라는 병법서를 하사받게 되었는데, 유배자의 신분에서 벗어나게 한 장본인이자 권율장군의 무남독녀 외동딸을 맞이했던 사위인 백사 이항복은 자신의 저서 ‘백사집’에 “당시의 안위의 승첩이 아니었다면 적들이 한산에서 승리한 기세를 타고 장차 충청도를 곧장 범하여 바다를 따라서 몰려오더라도 이를 물리쳐 금할 사람이 전혀 없었을 것이다.” 라고 기록하였는데, 이 말인즉슨 명량에서의 패전은 곧 나라가 멸망이며, 나라를 구한 1등 공신으로 안위를 언급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김제시 학예연구사 백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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