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금요수필]첫날 밤

송일섭

기사 작성: 이종근 - 2025년 10월 23일 07시16분

잔뜩 공포에 싸인 얼굴로 익산역을 출발하는 특별 열차에 몸을 실었다. 간간이 군인들의 날카로운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고 젊은이들의 웅성거림이 요란했다. 날이 어둑해지자, 기차는 미련 없이 출발하여 논산훈련소에 도착하였다. 6주간의 고된 훈련이 시작되었다.

겨울철인데 훈련이 끝나고 막사에 와도 난로는 없고, 막사 밖 아궁이에 석탄으로 불을 피우는 게 고작이었다. 어느덧 지옥 같은 훈련이 끝나고 훈련병들은 뿔뿔이 헤어졌다. 이번에는 논산역에서 밤중에 군인 열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났다. 내가 도착한 곳은 카투사 훈련소가 있는 인천 부평 미군 부대였다. 배정받은 막사 안에 들어서자, 석유 난로가 빨갛게 달아올라 외부 온도와는 정반대로 훈훈하였다. 어찌나 따뜻하고 좋은지 눈물이 핑 돌았다. 춥게 지내던 날들이 불쑥 서럽게 느껴지며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석유를 마음 놓고 쓰는 미군 부대에 오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여기가 바로 천당이구나!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을까! 식당에는 우유와 커피가 항상 준비되어 있었다.

이렇게 기분 좋은 첫날 밤, 카투사 선임자가 아직 풀지 않은 짐이 가득한 군용 백을 머리에 이게 하고, 기어 다니는 벌을 주기 시작했다. 얼마나 받았을까? 나는 힘이 빠져 축 늘어졌다. 죽사발이 됐다. 그리고 이어서 정신 차리도록 교육했다. 교육내용은 우리가 없이 사니, 미군들이 인종차별을 한다는 것. 카투사로 군대 생활을 하는 동안 많은 핍박을 받을 것이다. 이런 약소국가의 설움을 후배들에게 간절히 주입하는 것이었다. 동료들은 울먹울먹하였다.

가만히 보면 나에게는 그때의 설움이 지금도 남아있다. 몹시 춥게 살았던 우리는 격변의 세월을 보내고 자가용 시대를 맞게 되었다.

나는 김제시 진봉면 상궐 논에 콩을 심었다. 콩 심은 논에 농약을 하였지만 여기저기 풀이 났다. 풀을 뽑기 위해 김제 인력사무소를 찾았다. 사무실에는 베트남 청년이 대기하고 있었다. 뜨거운 여름날 뙤약볕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 풀을 뽑게 하였다. 갑자기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이제는 우리가 외국인을 고용해 험한 일을 시키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변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올해 9월 초순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 • 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에서 우리 근로자가 다리와 허리에 쇠사슬로 체포되었다. 나는 TV를 시청하며 젊었을 적 군대 생활을 하면서 서럽게 인종차별을 받았던 생각들이 떠올랐다. 우리가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돈이 한화 약 700조 원에 이른다. 그러면서도 굴욕적인 ‘쇠사슬 연행’ 사태가 터진 것이다. 미국에 조공을 바치듯 투자하면서도 대우받기는커녕 미국은 노예처럼 우리를 대접한다. 이럴수록 우리는 더욱더 국력을 길러야 하고 단결해야겠다.

송일섭 수필가는

한국문인협회 회원 등

전주 양지노인복지관 문예창작 강사역임

현재 김제문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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