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서각은 오래된 나무에 혼 불어넣어 천년학의 비상을 꿈꾸는 일'

기사 작성: 이종근 - 2025년 08월 13일 12시34분

"서각은 오래된 나무에 혼을 불어넣어 천년학의 비상을 꿈꾸는 일이다. 서각은 기본적으로 음각, 양각, 음양각 등 여러 기법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양각은 작품에서 돌출된 부분, 음각은 작품에 파여 있는 기법이다. 음양각은 음각과 양각이 어우러진 기법이다. 기본적인 기법을 비롯, 다양한 기법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어야 모든 서각 관련 작품들을 출품할 수 있다. 작품 방향성을 위해서는 민화, 건축, 도예, 서예, 한국화 등도 다룰 수 있을 정도로 나름 스펙트럼이 넓은 가운데 서각한 지 55년째, 자연이 준 그대로의 재료로 희로애락 담아 왔다“

장수 계남 장안문화예술촌 입주 서각 작가 찬샘 이봉희선생이 22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장수 장안문화예술촌 본관 전시실과 장수미술관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갖는다.1984년 전북예술회관에서 첫 목공예 개인전을 가진 후 41년만에 마련한 자리에 다름 아니다.

그는 "서각은 이끼 낀 섬돌에도 꽃을 피우게 하고 오래된 고목에 싹을 틔우게 하는 마법같은 작업"이라고 했다. 서각이란 글씨나 그림을 나무나 기타 재료에 새기는 것으로 문화, 예술적으로 발전시킨 것이라며 문자나 회화를 기록하여 욕구를 표현한 것이 서각의 시작이다고 했다.

그는 "서각의 매력은 밋밋한 평면이 입체적으로 변신한다는 것에 있다. 전시 타이틀이 '나무, 글을 품다'인데 나무가 글만 품는 게 아니라 문자, 그림, 기호도 품고 저의 생각의 여운과 인생의 희로애락도 품는다"고 했다.

서각은 단순한 조형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마음을 담아낸 이야기이다. 그 따뜻한 이야기가 관람객들의 마음 속에도 잔잔한 감동으로 새겨지길 바란다. 나무 결 따라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껏 새긴 따뜻한 글귀들엔 '문자 조형 예술가' 작가의 인생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나무의 숨·결을 따라 아로새긴 자유분방한 글, 감각적인 디자인을 선보여온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때론 음각, 때론 양각으로, 때론 투박하게 때론 매끄럽게 깎은 나무 등으로 만든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

"서각은 단순히 ‘새기는 일’이 아닌 나무와 마음을 마주하고 나의 손끝에 담긴 생각과 숨결을 새기는 시간이다. 그래서 글자 하나를 새기기 위해 나무의 결을 읽고 나무의 숨을 듣고, 그 안에 깃든 세월을 헤아리는 것이 서각의 시작이자 전부이다"

자가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모방 없는 독창성'이다. 기존 작가들의 기법을 따르기보다 매 전시마다 이전에 없던 방식을 스스로 탐구하고 구현해왔다. 전통 목판의 한계를 넘어 다양한 재료와 결합하는 실험을 지속해오며 독자적인 조형세계를 확립해왔다.

'웃음', '하하하호호호', '허허허헤헤헤헤' 등의 작품을 보면 긍정의 철학과 해학성이 시선을 압도한다.

작가는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글귀를 나무에 켜켜이 새겨넣는다. '웃음'의 글자를 새긴 작품에서는 '웃음'이라는 글자가 환하게 웃는 얼굴 모습으로 입체화 됐고, 버려지는 나무나 오래된 가구를 활용한 의자 작품도 눈에 띈다.

'웃음꽃 당신'은 힘들어도 웃으며 구김살 없이 사는 당신을 생각하며 만든 작품이다. '지치고 힘들 때 당신의 따뜻한 미소는 새로운 희망과 멋진 꿈을 꾸게 하였소'

"서각은 글, 그림, 조각, 회화가 어우러진 종합예술이다. 글씨를 새기는 과정에는 단순한 문자의 형태뿐 아니라 조각적이고 회화적인 감각도 함께 담긴다. 단순히 문장을 새기는 것을 넘어 나무 위에 감성과 사유를 입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독특한 매력이 있다. 하나의 작업 안에 여러 예술 요소가 어우러져 표현의 폭이 넓고 작업할수록 새로운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작가는 평면적이고 전통적인 서각에서 현대 회화와 조형을 도입한 입체적 서각을 시도하는 등 서각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왔다"

그의 작품은 완주 송광사 약사전, 장수 팔공산 팔공사 운점루, 전해산 기념관, 정인승 기념관, 논개기념관, 의랑루, 장수향교 중수기, 마이산 금당사 대웅보전, 일주문, 계룡산 신원사 일로향루, 부안 매창공원 매창기념관 편액, 전북대 신정문 현판, 장수군 계남면 문예복지회관 모정 현판 ‘향수정(鄕愁亭)’ 등 이루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작품 '약사전(藥師殿)'은 중생의 아픔 씻어주는 ‘의왕찰토(醫王刹土)'를 형상화했다.

그의 작품의 또다른 특징은 버려진 나무를 재활용해 예술작품으로 재탄생시킨다는 점. 무용지물에 예술혼을 담아 유용지물로 만드는 셈이다. 주로 활용하는 나무는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채색이 잘 되고 조각칼로 나무를 깎을 때 사각사각하는 느낌이 좋단다. 나무결이 잘 살아있는 팽나무를 비롯, 느티나무, 밤나무도 작품의 재료다.

"전시장에 오면 눈으로만 작품을 보라고 하는데 제 전시에 와서는 나무결을 손으로 만져보고 나무의자에도 앉아보기를 바란다. 나무는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 더 예쁘다. 일상 같은 편안함, 따뜻한 안정을 줄 것이라 믿는다"

이어 "전업작가로 오랜 시간을 흔들림 없이 걸어올 수 있었던 건 한결같은 응원과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젊었을 땐 스스로가 가장 잘났다고 여겼지만 돌이켜보면 언제나 곁에서 함께해준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길이었다.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했다.

그는 김제 금구출신의 작가로, 2001년 폐교를 활용한 전국 최초의 전통문화예술 종합체험관 장안문화예술촌에 입촌,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장안문화예술촌 문화학교엔 문방사우 고태봉.박천생, 천연염색 문정숙, 도자기 및 다도 이은주, 서각 및 목각 이봉희 등이 입주한 바 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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