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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란 이름의 자유로운 구속

김스미의 미술산책〈64〉 잭슨 폴록 ‘스테노그라피 피규어’

물감을 흘리고, 뿌리고 무아지경의 행위
명상적인 색감과 동양적인 자유로운 필선

기사 작성:  이종근 - 2025년 04월 02일 09시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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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다양성의 시대다. 개인이 지닌 재능의 가치조차 측정이 모호해졌다. 지나친 시대성만을 요구하며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짜깁기하는 관 주도의 미술관과 평론가들의 지적 편견 속에 예술의 사각지대에 놓인 희생양들이 새로운 소외의 대상이 된다. 천재의 카테고리는 누가 만드는가? 예술의 상업성이 누군가의 곳간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 될 때 예술의 원천은 천박해진다. 어떤 화가는 그림을 그만두어야만 했다.

전설적인 작업을 한 미국의 화가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이다. 유럽 미술을 빌려다 전시하는 현실에서 미국의 예술적 자존심을 지켜준 작가다. 서양미술이 중심을 미국으로 흘러간다. 캔버스를 이젤에서 내려 바닥에서 그린다. 물감을 흘리고, 뿌리고 무아지경에 빠진 그가 새롭게 만든 회화 양식을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 드라핑 기법(Drap painting)이라 한다. 작가들은 평생 자기만의 이미지를 찾고자 고뇌한다. 예술 영역의 소재는 이제 새로운 것은 거의 없다. 새로운 각색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작가들은 터무니없음에 목숨 걸고, 극적인 그로테스크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쥐어짠다.

잭슨 폴록은 2차 세계대전 후 뉴욕에서 등장한 추상표현주의 중심 작가다. 추상과 표현의 혼합용어이며 그들은 자연을 재현하지 않는다. 마크 로스코, 빌럼 데 쿠닝 등이 미국의 대공황기 연방 미술 프로젝트 벽화 작업을 하면서 시작된다. 추상화나 드로잉, 콜라주, 조각작품을 제작한다.

잭슨 폴록의 〈스테노그라피 피규어〉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피에트 몬드리안은 “지금까지 미국에서 본 작품 중 가장 흥미로운 작품이다” 라 한다. 폴록은 작업실 바닥에 천을 깔고 막대기, 붓 등 다양한 도구로 물감을 뿌리고 흘리고 그어서 감정을 표현한다.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작품은 밝고 경쾌하며, 공간이 많아 시원함을 준다. 나중에 부인이 되는 리 크래스너와의 만남에 대한 신선한 열정일까? 왼쪽 위에 있는 여성의 머리, 중앙에 걸친 팔과 손의 유연성, 붉은 선들이 다분히 유희적이다. 왼쪽 인물의 쭉 뻗은 손은 구애의 상징인가? 작가는 아마도 사랑에 빠진 듯 다이나믹한 선들의 하모니가 격정적이다.

〈넘버 31〉은 폴록의 드라핑 기법이 완숙해지는 시기에 제작한 가장 큰 규모의 작품이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위로 보고 거꾸로 보아도 경계가 없다. 무의식적 액션만 있다. 삼매에 빠진 무당의 춤이다.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접점에 행위가 있다. 서로 다른 색들, 그물과 매듭으로 이어진 삶이란 실타래를 풀어내는 진혼곡이다. 추상회화에서의 ‘무(無)’는 동서양의 영원한 화두다. 폴록의 ‘무’는 원초적 ‘무’다. 명상적인 색감과 필선이 마치 한 폭의 난해한 동양화인 듯 오묘한 매력에 빠진다.

폴록의 유명세는 카우보이의 자유로운 기질을 가졌다는 전설도 만들어지고, 평론가 헤럴드 로젠버그는 그를 위해 ‘행위예술’이라는 용어도 처음 만든다. 전 세계는 폴록 광풍이 불고 지금도 그를 따라 작업하는 작가들이 많다. 마흔넷에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 폴록의 사인은 단순치 않다. 재능을 천재적으로 표현했지만, 정작 자신의 삶에 대한 통찰을 되새김질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오로지 예술을 위한 예술이었다. 오래 살았다면 폴록의 그림은 어떻게 변했을까?/화가, 칼럼니스트 김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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