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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롱의 위대한 망설임

[책마주보기]클레어 키커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하채현)


기사 작성:  이종근 - 2024년 07월 08일 08시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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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펄롱의 이야기다. 펄롱은 석탄배급소를 운영하는데 어느날 수녀원에 배달을 갔다가 석탄저장 창고에 갇힌 아이를 발견했다. 수녀원이 마을에 뻗친 영향력이 커서 누구도 수녀원을 상대로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 누구나 다 만류하는 일이어서 펄롱은 계속 망설였지만 결국 용기를 냈다. 두 사람(탈출한 아이와 펄롱)은 계속 걸었다. 최악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고, 저 문 너머에 고생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로 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변변치 않은 인생은 지나갔다.

“펄롱은 어렵지 않게 아이를 데리고 진입로를 따라 나와 언덕을 내려가 부잣집들을 지나 다리를 향해 갔다. 강을 건널 때 검게 흘러가는 흑맥주처럼 짙은 물에 다시 시선이 갔다. 배로강이 자기가 갈 길을 안다는 것, 너무나 쉽게 자기 고집대로 흘러 드넓은 바다로 자유롭게 간다는 사실이 부럽기도 했다. 외투가 없어서 추위가 더 선뜩했다. 펄롱은 자기보호 본능과 용기가 서로 싸우는 걸 느꼈고 다시 한번 아이를 사제관으로 데려갈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펄롱은 이미 여러 차례 머릿속으로 그곳에 가서 신부님을 만나는 상상을 해봤고 그들도 이미 다 안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시즈 케호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다 한통속이야.

가는 길에 오래전부터 알고 거래해 온 사람들을 마주쳤다. 대부분 반갑게 걸음을 멈추고 말을 걸었으나, 여자아이의 새카만 맨발을 보고 그 아이가 펄롱의 딸이 아니란 걸 알아차리자 태도가 바뀌었다. 몇몇은 멀찍이 돌아가거나 어색하게 혹은 예의 바르게 크리스마스 인사를 하고는 가버렸다.” (117쪽).

나는 소설가 클레어 키커가 그린 펄롱의 모습에서 ‘망설임’을 포착한다. 펄롱의 망설임은 이 소설에 개연성(蓋然性)을 부여하는 기제다. 펄롱이 어떻게 느끼는지 정확하게 알려주기 때문에 펄롱의 마음이 곧 내 마음이 되면서 공감을 일으킨다. 펄롱의 망설임이 펄롱에게 호흡을 불어넣어 인간의 호흡이 팔딱거리며 숨을 쉬게 한다.

펄롱은 얼어붙은 자물쇠에 뜨거운 물을 부어야 했는데 속으로는 도로 집에 들어가 이불 속에 두 발을 넣고 싶다고 느꼈다. 펄롱은 원장수녀가 차 대접을 마치고 그만 나가주기를 바랄 때에 오히려 더 버티며 수녀원에서 머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펄롱은 크리스마스 이브,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지만 어쩐지 베로강을 배회하며 네드(펄롱을 돌보고 키워준 집사)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 밖에도 펄롱의 시선과 행위로 이루어진 이 소설에서 펄롱의 망설이는 마음은 펄롱이 선하고 의지가 있으며 결국 용기를 낼지도 모른다는 독자로서는 걱정스런 기대를 하게 만든다.

나는 펄롱이 보호본능을 따랐으면 좋겠기도 하고 용기를 내기도 했으면 좋겠기도 해서 자주 혼란에 빠졌다.

오랫동안 문학이 힘이 세기를 바랐다. 그러나 문학의 힘이 무얼지 다가오지 않았고, 어떻게 하면 문학이 세질지 구체적이지 않았다. 다는 아니지만 클레어 키커의 문장에서 ‘문학의 센 힘’을 느꼈다. 결정체처럼 견고한 문장이 힘이 셌다. 이 점은 행복한 독서였다. 그리고 읽는 내내 나는 우리들의 망설임의 창구가 어딜까 계속 고민이 들었다. 이 점은 힘든 읽기였다. 다 한통속인 바로 지금 어떻게든 용기를 내야 한다. 이제 시작된 최악의 상황에서 계속 걸어야 하는 내가 변변치 않은 인생을 택하지 않기를 이 순간에도 간절히 바라며, 이것을 알려준 힘 센 이 소설이 나는 참 고맙다. 펄롱의 망설임이 위대한 이유다.



하채현 작가는



생태에세이 '수수에게 들키다' 저자

군산대학교 인문도시센터 연구원

우석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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