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금요수필]고령운전자

정남숙

기사 작성: 이종근 - 2024년 04월 04일 10시35분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일어나보니 아직도 캄캄한 밤중이다. 그렇다고 다시 잠을 청할 수는 없었다. 응급실 환자가 의사의 검진을 기다리는 초조함이 이런 것일까, 엊저녁 직원들이 퇴근하고 없는 정비공장에 내 차를 입고시키고 돌아왔다. 요즘 ‘고령 운전자’에 대한 제한 요구에 평소 불편한 시선을 느끼고 있었는데, 고장이 크고 비용이 많이 들면 이번 기회에 나도 면허증 반납도 생각 해봤다.

하루의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황당한 일을 당했다. 우리 집 앞 사거리 빨간 신호에 정차하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다. 파란 신호가 들어와 출발하려는데, 펑크 난 바퀴가 끌리는 느낌이다. 곧바로 길가에 세우고 내려와 앞뒤 바퀴를 살펴봐도 이상이 없다. 엔진소리도 평소와 다름없다. 별일 아닌 것 같아 다시 출발을 시도해 봤으나 움직이지 않는다. 지난해 광폭타이어로 바꿨고 올 3월 정기검사도 받았으니 아무 이상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자동차가 멈추었으니, 어디가 고장인지 내 실력으로는 도저히 알 길도 없고, 대책이 서질 않는다. 보험회사에 전화하고 기다린 지, 한 시간이 넘어서야 견인차가 도착했다. 집 가까운 정비공장까지 실려 가며 기사에게 어디가 고장일 것 같으냐 물어봤다. 미션이 나간 것 같다며 미션 값이 상당히 비쌀 것이라 겁부터 준다. 10여 년 동안 7만여km를 탔지만, 소모품 외엔 주요부품은 한 번도 갈아본 적 없었는데, 갑자기 큰돈을 들여야 한다니, 내 머릿속은 온통 주머니 속 계산부터 하고 있었다.

나에게 있어 자동차는 내 수족과 같은 존재다. 당장 차가 없으면 나의 일상생활은 올스톱, 식물인간과 다름없다. 아침 일찍 정비공장을 찾았다. 어젯밤, 커다란 메모지를 운전석 앞에 얹어놓고 갔는데 거들떠보지도 않았나 보다. 사무실에 접수하며 견인차 기사의 말을 들려주니 사무원은 퉁명스럽게 오토미션은 대형정비공장으로 가야 한다고 한다. 예상대로 큰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사전검사를 하던 정비 기사는 미션이 아니라 브레이크 라이닝이 닳아 생긴 현상이라며, 앞뒤 라이닝과 부품 몇 개 교환하면 된다고 한다.

그럼 그렇지, 나는 아직 차가 필요하고, 내가 할 일은 많은데, 50여 년의 면허를 반납하고 집안에 주저앉아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내 차가 공중 부양되어 부품을 갈고 있는 동안 잠시 생각해 봤다, 언제부턴가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 하나로 고령 운전자의 사고를 막기 위해, 면허갱신 기간을 10년에서 5년, 다시 3년으로 축소하고, 10만 원 상당의 교통비를 지원하거나, 지역 상품권을 제공하며 고령자 운전면허 반납을 유도하고 있다. 교통정책을 연구하는 이들은 노년의 삶을 살아보지 못한 젊은 세대들이다. 시간이 지나면 인간은 누구나 고령자가 된다. 고령자일수록 이동권의 약자들이다. ‘보족(補足)의 원리’를 이용 부족한 능력한계를 기계에 의해, 노년의 삶을 풍요롭게 보낼 수 있는 정책을 발굴하는 지혜가 먼저일 것 같다. 고령자 면허반납에 팔 걷고 나서기보다 고령자의 이동권을 보장할 수 있는 ‘소형 자율운행차’를 보급하여, 노화로 인한 인간의 존엄에 대한 또 다른 배려가 아닐까 싶다.

정남숙 수필가는

‘대한문학’ 수필 등단

수필집: ‘노을을 닮고 싶다’ ‘난 아직도 꿈을 꾼다', ‘역사의 마당에서 전통이랑 놀아보자’

‘대한문학 작가상’, ‘올해의 수필인 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선정, ‘올해의 수필인 상’ 수상

전북문인협회, 전북수필, 행촌수필, 은빛수필 회원.

국립전주박물관, 전주기독교역사기념관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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