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민속박물관과 한국국학진흥원은 지난달 23일부터 2020년 5월 15일까지 박물관 상설전시실 3층 가족 코너에서 ‘풍산김씨 허백당 김양진 문중의 가족이야기 - 이치(理致)를 깨닫고 나라를 생각하다’전을 갖고 있는 바, 유독 '세전서화첩(世傳書?帖)' 의 '완영민읍수도(完營民泣隨圖)'가 눈길을 끌고 있다.

‘세전서화첩(世傳書畵帖 19세기 후반,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풍산김씨 근전문중 기탁)’은 허백당(虛白堂) 김양진의 12대손 김중휴(金重休, 1797~1863)가 가문을 선양(宣揚)할 목적으로 19명의 조상에 얽힌 31가지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엮어 만든 서화첩(書畵帖)이다. 이 가운데 ‘완영민읍수도(完營民泣隨圖)’는 허백당 김양진이 전라도관찰사로서 선정을 베푼 이야기로 임기를 마치고 돌아올 때 고을 사람들이 전송하러 나와 눈물을 흘리면서 따르고 있는 장면이다. 

1520년 김양진(金楊震, 1467~1535, 호는 허백당(虛白堂)은 전라감사에 임명됐다. 연산군 시절의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아직 가시지 않은 탓에 온 나라의 민심이 흉흉했다. 특히 수령이 백성들로부터 거두어들인 세금을 갖고 달아나는 경우가 적지 않아 수만 섬의 곡식이 문서에만 남아있는 실정이었고, 이에 견디다 못한 백성들은 짐을 꾸려 고향을 등지는 일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김양진은 부임한 즉시 폐단을 바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에서 백성들의 억울함을 일일이 듣고 해결해주는가 하면, 허위로 작성된 세금문서를 발견하면 자신의 급료를 반납해 채워 넣었다. 또 매달 초하루가 되면 노인들을 찾아다니면서 쌀과 고기 등을 나누어주고, 젊은이들을 모아서 소학과 심경 등을 강론했다. 그런 다음 그들 가운데 재주와 학식이 뛰어나거나 효심이 지극한 이가 있으면 조정에 추천하기도 했다. 

또, 비록 신분이 미천한 사람일지라도 효심과 우애를 갖춘 경우에는 술과 고기 등을 상으로 내리거나 신역(身役)을 면제해주고 정문(旌門)을 세우도록 했다. 그러자 모든 백성들이 마치 부모와 같이 섬기게 됐다.

김양진이 임기를 마치고 돌아올 때 고을 사람들이 전송하러 나왔다. 수레와 말이 수 십리에 이르렀고 눈물을 흘리면서 따르는 이들이 무려 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에 김양진이 겨우 설득해 되돌려 보냈지만, 30 여 명의 사람들은 막무가내 따라와서 하인으로 삼아줄 것을 간청했다. 

김양진이 전주 감영에서 돌아오던 날, 망아지 한 마리가 뒤따르는 것을 보고 하인에게 “내가 처음 이곳에 올 때는 망아지가 없었는데, 지금 갑자기 보이는구나. 이곳에서 태어난 것인가?” 하고 물으니 “예, 그렇습니다” 하고 답했다. 그러자 “그렇다면, 이는 전주 감영의 재산인데, 내가 어찌 갖고 갈 수 있겠느냐! 빨리 끌고 가서 나무에 매어 놓고 오너라” 하고 지시하니, 하인이 망아지를 끌고 가서 동문 바깥의 버드나무에 매어놓았다.

당시 사람들은 망아지를 중국 수춘(壽春)의 송아지(삼국시대 위나라 시묘(時苗)가 수춘령(壽春令)이 되었을 때 타고 갔던 암소가 낳은 송아지를 수춘에서 낳았다고 해서 그곳에 두고 왔다는 이야기가 있다)에 비유했고, 전주의 백성들은 망아지가 묶여있던 곳에 김양진의 생사당(生祠堂)을 세운 것으로 전한다. 

이후 김양진이 돌아오고 나서도 그곳 사람들이 은혜를 잊지 못해 전송 당시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서 본가로 보내주었다.

이후 김양진이 숨을 거두자 이들은 상복을 착용하고 무덤 아래 머물면서 떠날 줄을 몰랐다. 하는 수 없이 문중에서는 노비안(奴婢案)에 이들의 명단을 기록해두었는데, 1761년 무렵 문중 합의에 의해 노비안을 불태웠다고 한다. /이종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