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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칼럼]가족 치유


기사 작성:  강남인 마음사랑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2015.11.30 16:11
비오는 날 달팽이를 본 적이 있는가?

인간은 달팽이와 같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우리 모두는 시간의 흐름 속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기억의 껍질을 싣고 다니며 곧 그 자체가 된다. 인간으로 태어나 그 삶을 시작하는 기억의 시초는 가족이 아닌가 싶다. 가족 안에서 ‘~의 자녀로’, ‘~의 형제로’ 태어나 감정을 교류하고 서로에 대한 책임을 배우고 상호 의존하며 성장하게 된다. 심지어 세상을 바라보는 개개인의 인지적 스타일까지 가족의 가치관이나 분위기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다.



최첨단 의학 장비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그 놀라운 기능을 발휘하는 요즘, 여전히 진단과 치료가 ‘사람’ 중심의 면담에 의존하는 분야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정신건강의학과’ 가 아닐까싶다. 나는 오늘도 책상 하나의 거리를 두고, 두 귀를 활짝 열고 내 앞의 환자를 바라보며 어떠한 기계에도 의존하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일상을 관찰하고, 진단하고 치료한다. 그리고 임상 경험이 늘어갈수록 확실해지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환자가 드러내는 문제는 비단 그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상당 부분 그들 가족의 문제를 대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마음이 우울하거나 불안해서, 때로는 조절할 수 없는 음주나 중독의 문제로, 또 다른 경우는 가출이나 폭력, 과잉행동 및 주의력 결핍장애와 같은 자녀 문제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다. 그들이 호소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왜 그러한 문제가 생겼는지를 함께 고민하다보면 가족의 문제가 보인다.



가족은 행복의 근원이 되는 위대한 자원이지만 때때로 큰 실망과 불만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조절하지 못하는 과도한 음주’라는 중독 문제가 있는 남편과, 음주 후 가정 폭력을 일삼는 남편 때문에 우울증에 빠진 아내, 오랫동안 아버지의 폭력에 노출된 아이의 정서적 불안과 가출 등은 비단 남편, 부인, 혹은 아이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유 없이 불안해하고 집에 있지 못하고 가출을 반복하는 아이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혼자서 치료할 수 없다. 의사는 보다 넓은 관점에서 이들의 가족 문제를 발견하고 원만한 해결과 치료를 위한 최상의 조언을 하거나, 때로는 치료적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가족의 한 구성원이 되어 서로를 이해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다리를 건너는 것은 결국 가족 구성원 모두의 몫이다. 가족이란 종종 예측 불가능한 방법으로 서로 강력하게 영향력을 미치는 개인들의 집합체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에, 가족 단위를 치료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가족이 치료에 개입되면 그 어떤 훌륭한 치료자보다 가장 효과적이고 안정적인 치료가 가능해진다. 우리 모두는 자기 안에서 존재할 뿐만 아니라 가족과의 상호 관계 속에서 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기 때문이다.



가족 치료는 과거의 힘을 인지하고, 사람들이 어느 정도는 가족 간의 ‘과거’라는 기억 속에서 살아간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가족 치료는 ‘현재’의 힘도 인정하며, 현재 가족에게서 받는 지속적인 영향력을 바탕으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간다. 건강하지 못한 기존의 가족구조를 바꿈으로서 각 구성원의 삶 역시 건강하게 바뀔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치료가 시작되며, 가족 자체가 치료적 중재의 장이 되는 것이다. 가족 치료가 진행되면 결국 서로에게서 서로를 불편하게 하는 점들을 보기 시작한다. 서로를 탓하고 비난하며 감정적으로 대립하기 일쑤였던 가족은 치료자가 함께하는 보다 안전한 환경에서 이전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혹은 말하지 못했던 각자의 경험과 생각, 감정을 주고받는다. 이 과정을 통해 ‘나’ 로부터 ‘나와 너’ 로의 전환이 가능해지고 갈등과 오해가 풀리기 시작한다. 가족 안에서 보다 건강한 각자의 위치를 찾아가는 재경험의 기회는, 다시 미래를 이끄는 건강하고 단단한 기억의 껍질을 한겹 한겹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혹시 지금 마음이 아파서 힘들어 하는 가족이 있다면 함께 치료에 동참할 것을 간곡히 부탁하고 싶다. 아픈 그들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아끼며 사랑하는 가족이야 말로 치유를 위한 최선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새전북 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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