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의학칼럼] 적과의 동침

기사 작성: 이건학 전라북도마음사랑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부& - 2015.11.09 18:42

이는 줄리아 로버츠 주연으로 1991년에 상영되었던 영화 제목이다. 끊임없이 부인을 통제하고 의심하는 남편의 집요함과 그에게서 벗어나려는 아내의 처절한 몸부림이 보는 이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물론 영화 내용은 허구일지 모르지만 소위 의처증이나 의부증으로 인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영화보다 더 극적일 때가 많다.

정신과적 용어로 부정망상(不貞妄想)이란 배우자나 연인이 성적으로 부정한 행위를 했다라고 끊임없이 의심하는 상태를 말한다. 배우자가 의심되더라도 아니라는 증거가 확실하면 더 이상 의심하지 않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이러한 경우에는 외도가 아니라는 증거가 확실해도 신뢰하지 않고 나름의 논리로 끊임없이 의심하게 된다. 상대의 흐트러진 옷차림이나 이부자리의 작은 얼룩 등의 사소한 증거로 자신의 망상을 유지하고 정당화하려 한다. 이러한 자신만의 증거를 수집하려 미행, 도청, 녹음 등을 하기도 하고 폭행이나 협박을 일삼기도 하여 가정폭력 사건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전체 인구의 1-4% 정도가 이러한 증상을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30대에서 50대 사이에서 주로 관찰된다. 사회적 요인이나 성윤리의 변화 등으로 인해 점차 그 빈도는 증가되는 추세이다. 알코올사용장애나 우울증 등의 정신과적 질환을 가진 환자에게서도 볼 수 있지만, 이러한 부정망상 이외의 다른 정신과적 문제는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으며 이는 질투형의 망상장애로 진단될 수 있다. 이런 경우 자신의 배우자가 아닌 타인에게는 사교적이며 비교적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으로 비춰지는 경우도 많아 주변에서는 문제의 심각성을 미처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무엇보다 문제가 깊어지기 전에, 부부간에 서로의 자존감을 존중해주고 감정에 대해 공감해주는 대화를 자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주변 사람들은 환자를 달래기 위해 망상적인 사고에 동조하는 자세를 보이지 말아야 한다.

심한 경우에는 치료적인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자신의 문제에 대해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치료에도 거부적인 양상을 보인다. 따라서 처음 진료를 받으러 올 때에는 마지못해 또는 강제적으로 내원할 경우가 많다. 동반된 정신과적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 확인하는 등 세밀한 평가를 해야 하며, 객관적인 판단을 위해 환자 뿐 아니라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의 정보도 충분히 청취해야 한다. 망상적 사고에 대해서는 항정신병 약물 등의 약물치료를 시행하는데, 다른 망상에 비해 약물 효과가 크지 않은 편이어서 인지치료, 정신치료, 부부치료 등을 병행해야 더욱 효과적인 치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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