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의학칼럼] 알코올중독 치료는 사랑으로

기사 작성: 이해림 마음사랑병원 중독센터 수간호사 - 2015.10.19 19:04

‘진실로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온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요, 온 세상의 모든 사랑도 결국은 한 사람을 통해 찾아옵니다’ 라는 문구가 잘 어울리는 한 부부가 떠오릅니다.

상담을 통해 만나게 된 부부는 남편이 자신의 알코올중독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먼저 병원치료를 결심했다고 합니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마지막으로 믿어보자는 심정으로 동행했습니다. 남편은 잦은 음주와 폭음으로 간경화가 진행된 상태였습니다.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남편은 알코올로 인해 폭력성이 심각했고, 스스로를 제어하는 능력 또한 상실된 것 같았습니다. 생계를 위해 시작한 식당에 불을 지르겠다고 위협하며 실제로 시너를 뿌린 일도 있었고,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술을 마시고 거리에 쓰러져 얼굴이 바닥에 쓸린 지도 모르고 누워 있다가 응급실을 간 적도 수차례. 가족들의 애원에 짧은 단주를 하였지만 다시 음주를 하는 일이 수없이 반복되면서 자녀들도 아버지를 보는 것을 두려워하고 아내도 이혼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상황이었습니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알게 된 것은 남편분의 어머니가 남편 눈앞에서 돌아가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술을 즐겨하셨던 아버지 또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들이 술을 대놓고 자주 마시게 하는 방아쇠 역할을 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상담회기가 늘어가면서 그 모든 것이 술을 마시기 위한 핑계였고, 구실이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알코올중독이라는 질병만큼 슬프고, 잔인하고, 또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병은 없을 것 같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알코올중독을 만성적이고 치명적인 진행성을 띤 질병이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분명한 뇌의 질환이며, 심리적 질환이고, 사회적 질환이라 합니다. 최근에 가장 많이 강조되는 정의는 ‘인생의 질병’이라는 것인데요. 이 말에는 점진적이고 만성적인 자살행위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신을 잃어버린 상태, 또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상태라는 의미도 내포된 개념이겠지요. 지독히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 병! 나는 나를 사랑할 자격이 없고, 심지어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병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알코올중독에서의 치료는 내 안에 ‘사랑’이 있음을 확인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사랑을 부드럽게, 때로는 속삭이듯, 때로는 일정한 간격으로 노크를 해서 깨워야 하는 과정 말입니다. 물론 꾸준한 반복과 따뜻한 눈길로 한참동안을 바라보아야 하는 인내가 필수적으로 요구됩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사례자는 상담과 치료활동을 통해 단주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혼위기에 놓였던 부부관계도 신뢰를 회복하는 중이구요. 가장 큰 변화는 치료과정을 통해 자신만 몰랐을 뿐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었다는 것과 스스로를 사랑할 자격이 있음을 깨달아가면서 오늘도 환한 미소로 회복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알코올중독이라는 병에 걸렸든 아니든, 모든 존재는 사랑을 필요로 하고, 살아가는 이유 또한 사랑입니다. 깊어가는 가을, 진한 사랑을 하시는 날들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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