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의학칼럼] 욕구를 해갈하라

기사 작성: 이금단 마음사랑병원 진료지원팀장 - 2015.10.12 16:55

해마다 여름이면 온 가족이 놀러가곤 하는 다리 밑이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초여름이 되자 그 다리 밑에서 시원하게 놀 수 있으리란 기대에 이동식 평상을 꺼내 놓았다. 하지만 올해는 불행히 단 한번도 그 평상을 사용하지 못했다. 냇가가 크지 않은 탓에 일년 내내 물이 흐르긴 하지만, 다리 밑에 물이끼가 많아 여름이면 한번씩 내리는 큰 비로 청소가 된 다음에야 앉아 놀 수 있었는데, 금년에는 한 번도 큰물이 흐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출근길에 매일 지나가는 저수지 역시 요즘과 같은 가을 아침이면 산자락을 넉넉하게 안은 채 물안개 가득 피워 올리겠건만, 보이는 거라곤 거무죽죽하게 드러난 물때와 물풀들뿐이다. 계속되는 마른 가뭄에, 기댈 곳은 하늘뿐인 냇가와 저수지가 애처롭다.

마른 가뭄은 사람에게도 존재한다. 분노, 화, 적개심, 질투심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감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결과는 일명 ‘묻지마 폭행’의 형태로 대중매체를 통해 심심치 않게 보도되고 있다. 인천에서 커플이 새벽에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하기도 하였고, 김일곤은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납치하여 살해한 후 방화를 하기도 하였다. 이들 가해자들의 성격 바탕에는 분노와 적개심, 공격성이 상당히 존재했을 것이며, 이를 어떻게 다스려야할지 알지 못하여 사회에 반하는 극단적인 행동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이처럼 마른 가뭄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어떻게 관리하여 불행한 상황을 막을 수 있을까?

‘비폭력 대화’의 저자인 마셜 로젠버그 박사는 감정의 근원은 바로 욕구라고 하였다. 우리가 밭에서 자라고 있는 고구마를 볼 때 우리 눈에 먼저 보이는 것은 고구마의 잎과 줄기다. 땅을 파서 그 줄기를 따라가야 진짜 고구마를 만날 수 있다. 여기에서 잎과 줄기는 감정이고, 고구마는 욕구라고 볼 수 있다. 잎과 줄기만 흔들어 대며 고구마라고 외치면 상대방이 식물 전문가가 아닌 이상 고구마임을 알기 어렵다. 우리 역시 자신의 불쾌한 감정을 한껏 역기능적으로 드러내며 자신의 속마음, 즉 욕구를 알아달라고 하면 상대방이 그 속을 알 길이 없다. 따라서 우리는 고구마를 말할 때 잎과 줄기 대신 고구마를 내밀어야 하듯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할 때 욕구를 알아차려서 표현해야 한다. 인간의 욕구에는 무엇이 있을까? 자신의 꿈과 목표, 가치관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싶은 것을 비롯하여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고 편안해지고 싶고 건강하고 싶고 소통하고 싶은 것 등등이 있을 것이다.

분노와 화, 적개심, 공격성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마른 가뭄이라면 그 아래에 뿌리내리고 있는 인정, 사랑, 평화와 같은 욕구는 우물이라고 보면 된다. 마른 가뭄으로 메말라가는 저수지는 하늘의 도움을 받아야만 해갈될 수 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욕구라는 우물은 우리 자신이 스스로 팔 수 있다. 불쑥 화가 올라오면 잠깐 멈추고, 욕구를 들여다보자. ‘아, 지금 나는 이 정도면 충분히 잘했다는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구나. 그걸 몰라줘서 이렇게 화가 나는 거야.’ 상대방이 알아서 내 욕구를 채워주길 바라는 시간에 자신의 욕구를 스스로 알아차려보자. 욕구가 충족되지 못해 생겨나는 불쾌한 감정들이 맑은 물에 희석되어 우리 내면에서 찰랑거릴 것이다.

많이 보는 기사

[의학칼럼] 욕구를 해갈하라

새전북 만평

즐거운 벚꽃길 걷기

식목일 앞둔 나무시장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