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의학칼럼] 넌제로섬 게임

기사 작성: 강남인 마음사랑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진료과장 - 2015.09.07 18:04

부부간 큰 싸움 없이 25년간 함께 살아왔다는 것은 영혼의 교류 없이 허울만 좋은 상태를 의미한다. -A.P. Herbert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이라는 주례사의 주례는 급격한 이혼율의 증가로 지난 50년간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설사 현재 결혼을 유지하고 있는 부부라 할지라도 이들 중 상당수는 살면서 적어도 한 번쯤은 이혼에 대해서 생각해 봤을 것이다. 이는 비단 한국 사회의 문제만이 아니며, 미국의 경우 이혼율을 50%에 이르고 전 세계적으로는 이혼한 사람의 절반 이상이 재혼을 하고, 재혼한 사람의 절반 이상이 다시 이혼을 한다고 한다. 이혼하려는 대부분의 부부는 한동안 고통스럽고 힘든 경험을 하게 되며 각자의 삶에 매우 큰 영향을 주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혼 당사자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가족이나 친구, 직장 동료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이혼을 추진하는 동안 관련된 법적인 문제에서부터 금전, 자녀, 성, 직업 문제에 이르기까지 여러 마찰이 생기는 것이다.

이혼의 결정은 적어도 한 파트너가 극도로 내적 스트레스를 겪은 결과이며, 그것은 충족되지 못한 욕구나 목표, 생활 사건을 다루는 데 있어서의 미숙한 대처 방식 혹은 상대방과의 감정 교류 불가능 등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다른 한 가지는 외적인 스트레스로 직업, 확대 가족, 사회 활동 등이 부부 관계 유지의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결혼 초기부터 남편이 원하지 않는 직업 생활을 하는 아내의 경우, 아내는 자신의 일을 지지해 주지 않는 남편에게 화가 날 수 있다. 긴 시간 동안의 서운함이나 화는 점점 더 서로 정서적으로 뒤로 물러나는 결과를 가져오며 그들의 의사소통은 점점 더 긴장될 수밖에 없다. 또한 이들은 생물학적으로, 정서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남자는 남자의 언어를 여자는 여자의 언어를 사용한다. 즉 표면적으로는 같은 한국어를 사용하지만 그 말이 내포하는 의미는 서로 다를 수 있으며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감정적 거리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서로 간에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부부는 집에 들어가 서로 마주하는 상황이 불편해 질 수 밖에 없으며, 사무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진다. 서로에 대해 불평하지만, 점점 자신만의 활동에 몰입하는 게 더 편하게 느껴지며 결국 이들은 이혼을 생각한다.

이혼의 단계를 거치면서 각 파트너는 절망, 환멸, 충격, 공허함, 분노, 혼란, 외로움, 흥분, 후회, 수용, 독립심, 자율성 등 여러 감정 반응을 겪게 된다. 일부는 이러한 불안정한 정서 상태가 심하거나 오래 지속되면서 심한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를 겪으며 병원을 찾는 사람도 있다. 이 경우 경우에 따라 약물 치료나 정신 치료를 받기도 한다. 필자는 관계를 유지하려는 결정이나 이혼하려는 결정은 명확히 부부의 책임이며 이혼에 관한 윤리적이거나 도덕적 판단에 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혼’ 이라는 인생의 중대사를 고민하며 여러 정서적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치료하며 강조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그것은 안타깝게도 많은 부부는 그들이 깨닫지 못하는 제로섬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이혼으로 고민하는 많은 부부들이 한 사람이 이기면 다른 한 사람은 지는 경쟁적인 게임을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놓인 부부 관계에서는 공정성, 관용, 신뢰를 기대하기 어려우며 서로에게 신랄한 비판을 하기 쉽다. 하지만 부부 관계는 누구도 동시에 이기거나 지는 일이 없는 ‘넌제로섬 게임’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즉 이기고 지는 것이 서로를 상쇄시키지 않으며 서로 어떻게 협력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느냐에 따라서 그 합은 ‘0’보다 커질 수도, 작아질 수도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제로섬 게임에 집착하지 말고 가족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는 긍정의 넌제로섬 게임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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