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의학칼럼]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다'

기사 작성: 강남인 마음사랑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2015.07.13 19:37

아마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쯤 생각해 보는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왜 떠나고 싶은 걸까요?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 주는 직장이 있고, 해가 지면 누울 수 있는 보금자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현실을 떠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 비추어 보면 조금 더 바쁘고 사회적인 지위나 책임감이 무거운 사람들일수록 이러한 마음을 이야기 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번아웃 신드롬(burnout syndrome)’, 우리 말로는 ‘소진 증후군’ 이라는 단어가 이젠 더 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마음의 에너지가 모두 방전되어 무력감을 느끼고 완전히 힘을 잃은 뇌의 피로현상을 의미하는 이 단어가 오늘날 우리들의 삶을 대표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하루 평균 10시간을 일하고, 직장인의 85% 가 직무스트레스를 받으며 소진 증후군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영구 이민’ 과 관련된 인터넷 자료나 도서들은 해가 갈수록 인기를 더해가고 있으며, 소진 증후군은 이제 비단 직장인만의 문제가 아닌 자영업자나 주부, 학생들에 이르기 까지 전염병처럼 그 범위가 확대되어 가고 있습니다.

소진 증후군은 생각보다 무섭고 심각한 여러 결과들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극도의 무기력감이나 자존감의 저하, 자기 혐오감, 수면 장애, 우울증, 사회적 위축이나 도피, 불안 등을 겪을 수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결국 이러한 개인의 피로가 직장과 사회의 피로로 이어져 기업 생산성의 저하나 국가 경쟁력의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달리는 자동차는 고장이 나게 마련입니다. 더 멀리 더 빨리 달리는 엔진일수록 쉽게 뜨거워지게 마련이며 간혹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냉각수도 교체해주고 엔진 오일도 갈아주고 가끔은 휴게소에서 쉬어줘야만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지친 뇌도 한 번씩 점검해 주는 여유를 가질 때입니다. 흔히들 ‘힐링’을 위해서 운동이 좋으니 운동을 해라, 독서를 하면 좋다, 여행을 가라 등등 여러 방법들을 이야기 합니다. 여행을 위해서 새로 무언가를 계획하고 시간을 분배하고 돈을 마련하는 일련의 과정이 즐거운 일이라면 여행이 좋은 힐링 레시피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필자는 그 어떤 방법이든 자신만의 ‘힐링 레시피’를 만들어 볼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어떤 목적의 달성이나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서 몸과 마음을 움직여 왔다면 이제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내면의 욕구에 잠시 귀 기울이고 그에 맞춰 움직여 보는 것은 어떨지요? 하루 10분의 낮잠이나, 주변의 들꽃, 시원한 바람을 느끼는 것 자체가 당신의 지친 뇌에 에너지를 충전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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