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의학칼럼] 위험사회, 심리적 쿠데타 그리고 양육의 시간

기사 작성: 황태영 마음사랑병원 정신과전문의 - 2015.06.22 19:26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그렇다. 아마도 인간에게 그러한 타이틀이 붙게 된 것은 그리 되기를 바라는 신의 뜻이 있을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달리 태어나면서부터 바로 서지 못하고 스스로 목을 축이지 못하면서도 인간사회 속에서 20년이 넘는 오랜 양육의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 시간을 거쳐서 인간은 유한함 속에서 새로운 세대를 배출하고 만물의 영장이라는 지위를 면면히 이어가면서 찬란한 문명을 이루었고 문화적 발전을 거듭해오고 있다.

그러나, 인간사회에는 도처에 통제할 수 없는 가공할 만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단지 우리는 그 위험이 나의 심리적 영역 안에 있지 않다고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아름다운 풍경과 곡식을 제공하는 산과 들, 빠른 공간 이동을 제공하는 자동차 등의 교통수단, 풍부한 전기에너지를 공급하는 원자력발전소, 그리고 뇌 이식도 가능하게 된 눈부신 의학발전 속에서 우리는 풍요로움과 안녕을 당연한 일상으로 받아들이면서 위험사회의 빨간불은 한 번도 켜지지 않을 것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감당할 수 없는 위험이 현실이 되어 나타나면 생존본능과 공포의 쌍두마차가 마음속에서 폭주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다른 한 개인의 일이라면 무지하고 비이성적이라며 비난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나와 나의 가족, 그리고 나의 집단에게 다가올 경우에는 한 점의 위험이라도 용납하지 못하는 태도로 주변을 경계하고 타인을 과녁삼아 상처를 주고 파괴적 행동도 주저하지 않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그것이 집단적으로 세를 형성하게 되면 사회의 기반을 흔드는 심리적 쿠데타 상황으로 수렴하게 되는 것이다. 평온한 일상을 살면서 상상해 본 적이 없는 위험 상황에 떨어질 때 통제할 수 없고 보이지 않는 위험과 싸워야 하는 현실 속에서는 기존의 질서와 가치는 붕괴되고 배려와 인권은 실종된다. 아무래도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에게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인류의 역사는 천재지변, 종교, 인종, 질병 등 여러 계기를 통해 이러한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 왔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한국 사회는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라는 바이러스성 질환으로 인하여 사회의 심리적 균형이 흔들리고 있다. 하지(夏至)가 지나는 지금도 메르스로 인한 공포는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만큼이나 강하게 우리 사회를 얼어붙게 하는 듯하다. 보도에 따르면 메르스 발병과 관련된 병원에 근무하는 의료인이나 직원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학교에서 귀가조치를 하거나 등원을 거부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또한 ‘메르스 의사’로 불리며 인격살인에 버금가는 고통과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위중한 상태를 맞고 있는 의사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달아오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더욱 커지면 총과 칼을 대신하여 공포를 무기삼아 심리적 쿠데타가 사회를 휩쓸 수도 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 속에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양육의 시간에 있는 우리의 아이들 앞에서, 그리고 적어도 양육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가정과 학교에서 어른으로서 끈질기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명히 깨닫는 일이다. 지금 아이들에게 던져주는 한 마디와 아이들에게 행하는 하나의 행동 속에서 공포와 상처의 바이러스가 대물림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미래의 우리 아이들이 진정 만물의 영장이라는 왕관을 떳떳이 이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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