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비밀보장과 알권리

기사 작성: 한명일 마음사랑병원 교육수련부장 - 2015.04.20 16:53

지난 3월 24일,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출발하여 독일 뒤셀도르프로 향하던 독일의 저먼윙스 항공기가 알프스에서 추락했다. 이 사고로 비행기에 탑승했던 승객과 승무원 150명 전원이 사망했다. 그런데, 사고 원인이 매우 뜻밖이었다. 비행기 부조종사인 안드레아스 루비츠라는 청년이 고의로 충돌사고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테러, 인종, 종교와 관련은 없었다. 그가 왜 사고를 일으켰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기는 어렵다. 다만, 그가 우울증을 앓았고, 자살방법도 연구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는 우울증이 심한 상태에서 비행을 감행한 것 같다.

소속 항공사는 그가 우울증을 앓는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항공사가 그의 병력을 알지 못한 것은 직원 개인정보를 고용주가 수집할 수 없다는 사생활보호법이 일조했다. 몇 몇 선진국은 개인의 사생활을 지나치리만치 엄격하게 보호한다. 하지만, 이번 사고를 계기로 공동체 안전을 위해 사생활 정보도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 개인의 비밀을 보장하는 가치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이를 공개해야 한다는 가치 중에서 어느 편이 더 소중할까?

대개, 당사자는 자신의 병을 알리기 싫어한다. 그도 직장과 생업을 잃을까 걱정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키워왔던 조종사의 길을 접어야 할까봐, 사생활이 노출될까봐 노심초사했을 것이다. 병을 숨기고 싶은 욕구는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한편,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 항공사측은 직원의 병력을 적극적으로 밝혀 대응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무시할 수 없다. “항공사가 자기 조종사를 더 살폈어야 했다”는 유가족의 목소리도 울림을 준다. 일각에서는 조종사를 포함하여 다수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직종에 정신병자는 곤란하다는 걱정을 공공연하게 드러낸다.

비밀보장과 공익을 위한 알권리가 첨예하게 대립할 때 어느 쪽을 중시할지 판단하는 결정은 매우 어렵다. 하지만, 공익을 위한다 할지라도 개인의 병력이나 의무기록을 공개하는 행위는 조심해야한다. 문제의 소지가 있는 불확실한 극소수를 색출하기 위해, 투병하며 잘 살아가는 다수의 일반 시민에게 차별과 편견, 불이익, 불안을 야기해서는 안 될 일이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조종사로 일하는 것을 전면 금지하라는 일부 요구에 대해서 한 정신과 교수는 신중하기를 당부하였다. 그는 “일반적으로, 우울증과 공격적 성향의 자살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였다.

사회 전반적으로 개인정보 등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고, 전과 비교하여 본다면 개인정보 및 진료내역에 대한 관리가 호전되고 있다. 하지만, 개인정보를 소중히 관리한다는 병원과 의료보험공단의 약속을 사람들은 좀처럼 미더워하지 않는다. 지금도 정신건강의학과 진료현장에서 환자가 익명성을 요구하며 진료기록을 남기지 말아달라고 요청하는 일이 제법 있다. 우울증은 교육하고 홍보하여 치료 문턱을 더 낮추어야 하는 비교적 흔한 질병이고, 대부분 치료가 잘 된다. 그 가운데 극히 일부가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뿐이다. 본인이 원하는 한 치료 받은 사실이 공개되어서는 안 된다. 비밀이 노출될까 두려워하면서 자기문제를 드러내는 치료를 꺼린다면, 우울증 합병증으로 인한 무서운 사고가 또 발생할까 염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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