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실록 전북민주화운동사] 오송회 사건- 전두환정권 대표적 용공조작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06.07.03 18:02

1982년 여름 당시 서울대생 하모 군은 자신이 시외버스에 두고 내린 복사본 시집 한 권이 몇 달 후 여러 사람의 운명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린 대형 사건으로 비화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오장환 시인의 <병든 서울> 이라는 이 시집은 몇 달 후 전북도경이 발표한 용공이적단체 검거의 주요 증거물로 제시되었다. 1982년 11월 25일 전북도경은 군산제일고등학교 현직교사 8명과 전직 교사 1명 등 9명이 '오송회(五松會)'라는 용공이적단체를 구성했다고 발표하여 교육계는 물론 지역주민과 국민에게 커다란 충격을 던져주었다. 이들의 주요 혐의는 정부체제를 수시로 비판하면서 북한을 찬양하는 언행을 했고 오송회라는 반국가단체를 조직했다는 것이었다. 증거물로 제시된 <병든 서울>의 작가 오장환은 일제 시대 서정주, 김동리 등과 ‘시인부락’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해방 후 ‘조선문학가동맹’ 일원으로 활동하다 48년 2월 월북한 시인이었다. ‘월북’과 ‘병든 서울’이 버무려지면서 이들의 ‘친북’ 성향과 반정부의식을 이미지화하는 데 극적 효과를 내는 소품으로서는 꽤 적절한 자료였던 셈이다. 문학작품에는 문외한이었던 당시 공안 관계자들은 시외버스 안내양의 신고로 입수한 이 시집의 불온성 여부에 대해 당시 전북대 철학과 모 교수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 교수는 시집의 몇몇 구절을 지적하며, 지식인 고정간첩이 복사해 뿌린 것 같다는 진단을 내렸다. 1981년 ‘학림사건’, 부산의 ‘부림사건’, 대전의 ‘아람회 사건’, 공주의 ‘금강회사건’ 등 당시 전국적으로 대형 공안사건이 경쟁적으로 터지면서 관내에서도 뭔가 크게 터뜨릴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갖고 은밀한 내사가 시작되었다. 시집의 원 소유자이자 중심인물로 군산제일고 현직 국어교사이던 이광웅 선생이 포착되었다. 경찰은 이광웅 선생을 비롯한 현직 교사들이 1982년 4월 19일 군산제일고 뒷산에서 4.19 위령제를 지낸 사실에 주목했다. ‘건’을 터뜨리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한 경찰의 행동개시에 의해 덫에 걸린 희생자들이 속속 연행되었다. 이광웅, 박정석, 황윤태, 이옥렬, 전성원, 채규구, 강상기, 엄택수 교사 등 나중에 경찰의 명명에 의해 ‘오송회’의 멤버가 된 현직 교사들이 먼저 잡혀 들어와 모진 고문을 당했다. 이들은 11월 2일에 불법 연행되어 구속영장이 발부된 11월 25일까지 24일 동안과 이후 경찰에 송치된 12월 13일까지 43일 동안 생사를 오락가락하며 평소 사회주의를 동경해왔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좌경 의식화교육을 해온 ‘빨갱이’ 로 조작되었다. 몽둥이로 전신을 때리고 수십 차례 뺨을 때리는 것은 점잖은 조사에 속했다. 물고문, 통닭구이고문, 비행기고문에 이어 발가락 사이에 전선을 연결하는 전기 고문 끝에 용공단체 오송회는 5공 공안정권의 명을 받아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군산제일고 뒷산에 있던 소나무 다섯그루 아래서 모임을 가졌다는 데 착안해 ‘오송회’라는 작명을 해준 경찰에서는 이들 교사 모임을 고정간첩단 정도로 크게 키우려고 했다. ‘고정간첩’의 필수 요건인 북한과의 연결고리로 ‘최후의 5ㆍ18 수배자’로 불렸던 윤한봉 씨를 지목해 ‘김일성-윤한봉-이광웅-오송회’라는 계보도를 이미 만들어 놓고 여기에 짜맞춘 역할분담표 대로 교사들을 엮으려 했던 경찰은 81년 4월 윤한봉이 이미 미국에 망명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계보도’를 수정하느라 법석을 떨었다. 엮으려 했던 윤한봉이 없자 그를 대신할 누군가를 물색하던 경찰은 조성용 당시 KBS 남원방송국 방송과장을 골라냈다. 78년 군산제일고에서 함께 근무했던 인연이 있었던 조성용은 이광웅, 박정석 선생과 친교를 가지면서 문학과 영화, 세상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4년 전에 나눈 이 때의 대화내용을 문제삼아 조성용을 교사용공조직의 배후로 올려놓았던 것이다.오송회 사건이 터지자 지역에서는 문정현, 문규현 신부 등이 나서 수차례 기도회를 열고 현수막을 성당 입구에 내걸면서 쟁점화를 했다. 국내언론이 침묵할 때 AP통신이 타전하면서 독일을 비롯한 유럽사회에서 항의가 들끓었고 NHK국제방송도 합류했다. 이돈명, 황인철 변호사를 비롯해 대규모 변호인단이 조직되었다. 그 정황에서 뜻밖에도 1심 재판부는 이광웅(징역4년), 박정석(징역3년), 전성원(징역1년) 외 6명에게 선고유예를 내렸다. 석방된 교사들은 선고유예마저 인정할 수 없다며 항소했다. 그러나 고법은 오히려 이광웅(징역7년) 등 3명의 형량을 대폭 늘리고, 나머지 6명도 징역 2년 6월~1년씩을 선고하여 모두 법정구속했다. 가족들의 아우성과 통곡에 이어 문정현, 문규현 신부의 거친 함성이 법정을 뒤덮었다. 83년 12월 대법원은 고법의 선고형을 확정했다. 오송회 용공조작의 열쇠가 되었던 시집 <병든 서울>은 1987년 6월항쟁 직후에 해금되어 공식 출판되었다.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내쫓겼던 오송회 관련 교사들에게도 1988년과 99년 두 차례 교육부에 의해 특별채용 형식으로 교단에 다시 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일부는 학교로 돌아갔지만 이광웅 선생처럼 다시 전교조 관련으로 해직되거나 교단을 등지기도 했다. 시인이었던 이광웅 선생은 옥고로 얻은 위암으로 1992년 세상을 떴다. 2002년 1월 18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는 오송회 사건 피해자들을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했다. 다른 언론인들 경우처럼 KBS에 복직하지 못하고 오랜 야인생활을 감내해야 했던 조성용 선생은 2005년 9월 24년만에 KBS 방송심의위원으로 돌아왔다. 음악과 영화를 애호하던 평범한 지식인이 시대의 광풍을 만나 전혀 원하지 않던 신산의 삶을 감내해야 했건만 그의 삶은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수십 년 세월을 넘겨버렸다. 1심에서 교사들에게 선고유예를 내렸던 이보환 판사는 그 뒤 한직을 떠돌다가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2심에서 많은 이들의 억장을 무너지게 했던 광주고법 이재화 판사는 이보환 판사와는 다르게 승승장구, 서울고법 형사부장과 대구고등법원장을 거쳐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지냈다. 법조계에서는 ‘돌부처’라는 별칭으로 수련된 인격자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당시 사건발표의 주역이었고 이제는 모두 은퇴한 전직 경찰이 된 전북도경 대공분실 관계자 중 오송회 관련 사실에 대해 뭔가 책임 있는 증언을 한 사람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관련 선생들 중 누구도 사석에서라도 개인적 사과를 받은 적도 없다고 한다. 조성용 선생은 출옥 직후 그 중 한 사람을 공중목욕탕에서 마주쳤다. 횡설수설하던 그 경관은 자신도 옷을 벗었다며 “전부 개새끼들이여” 알 듯 모를 듯 한마디를 남겼다고 한다. 오송회 사건이 보여주듯 광주시민의 피를 묻히고 권력을 찬탈한 전두환 군부정권은 양심적 교사들의 작은 수근거림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모이면 죽이고 진실을 말하면 감옥에 보내는 극한의 공포통치를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었던 그 정권도 결국은 국민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진실을 통해 붕괴되었다. [ "보안법 걸리면 인생 끝장"]82년 남원방송국 방송과장으로 근무하던 중 ‘오송회’사건으로 연행된 조성용씨(69·현 KBS전주방송총국 심의위원). “경찰 안가에서 시작된 고문은 검찰조사까지 악랄하게 진행됐다. 아침에 전주지방검찰청 유치장에 들어가면 자정까지 그대로 방치하면서 고통을 안겨줬고 자정쯤이 되어서야 조사를 시작했다. 가장 춥고, 가장 깊은 밤, 가장 기진맥진할 때..."조씨가 빨갱이로 몰려 질곡의 24년을 살아가야 했던 단초는 지난 78년 3월 부임한 군산제일고 영어교사로 재직한 사실. 다섯살배기 첫 애가 갑자기 아파 사망하면서 조씨는 삶의 의미를 잃었고, 정부 영화제작소 근무를 견디지 못하고 사표를 던진 뒤 3년 동안 룸펜생활과 고시공부로 소일하다 75년 신태인종합고등학교 영어교사로 취직한다.78년 3월 군산제일고로 학교를 옮긴 조씨는 학창시설 후배였던 이광웅, 박정석을 동료 교사로 만나 역사와 시사에 관련된 소식을 나누며 급속하게 친해진다. 이후 조씨는 그만둔 지 6년여의 세월이 흐른 뒤 KBS에 재입사, 남원방송국 방송과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렇게 세월이 흐른 뒤 경찰이 찾아와 빨갱이의 누명을 뒤집어 씌운 것이 오송회가 나와 관련된 전부”라면서 “당시 전북도경찰청 대공분실에 이미 이광웅씨가 끌려와 있었고 전기고문에 초죽음이 돼 있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특히 조씨는 이 사건에 연류되는 기막힌 과정을 훗날 전해듣게 된다. 이광웅을 고문한 경찰은 ‘너에게 영향을 준 인물이 누구냐’는 질문을 했고, 이씨는 처음 김구와 신채호를 들었다는 것. 이때 경찰이 한 유명한 말이 지금도 회자된다. “개새끼 죽은 놈 말고, 산놈을 대라니까" 이때 이광웅씨는 ‘조성용’이라는 이름을 말했고, 조씨는 조작된 ‘빨갱이’가 되고 만다.조씨는 출소 후 전북대학교 앞 복사집 운영, 한겨레신문 전주지국장, 재야단체 활동 등을 하며 고통 속에서 삶을 살아야 했고, 지난해 9월에야 KBS전주방송총국 심의위원으로 복직된다.조씨는 “국가보안법에 걸리면 인생은 바로 끝장나는 것”이라며 “지금도 내 삶 여러 곳에서 ‘빨갱이’라는 천형이 되살아나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라고 전했다.조씨의 싸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조씨는 재심청구와 함께 가능한 모든 합법적 수단을 동원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조씨는 “현재까지는 오송회 사건이 ‘민주화와 관련된 사건’이라고만 판정을 받았을 뿐 아직도 우리는 전과자 신분”이라며 “사건의 진실을 밝혀 복권이 되어야 하고 20여년이 넘게 직장을 잃고 겪은 정신적, 물질적 피해 보상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한편 경찰청 내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 진정을 내고 조사결과를 기다려온 ‘오송회’사건의 주요 피해자들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같은 진정 사건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 경찰청 진정건을 취하해 줄 것을 요구해와 조만간 경찰청에 취하서를 제출할 계획이다.[눈이 맑은 시인의 조각난 꿈, 이광웅 선생]당시 교사들의 발언 중 친북용공으로 낙인찍힌 말들을 다시 들어본다. “4ㆍ19 정신을 본받아 의로운 일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이광웅) “일상에 연연하여 사회정의와 양심에 따르지 못하고 우물쭈물 살고 있는 내가 부끄럽다.”(박정석) “약하고 용기 없이 살아 왔다.”(전성원) “한 일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못하고 살아온 비겁한 삶이었다.”(황윤태) “살아남을 권리도 없는 비겁한 놈이었다.”(이옥렬)- 광주항쟁 직후 행동하지 못한 지식인의 자괴감을 드러낸 이 몇 마디 말의 대가로 그들은 수십 년 신산의 세월을 감당해야 했다.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은 그 목적이 미국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것일 뿐 공산주의자들의 행동이 아니다.” “농민들이 저곡가에 시달린다.” “북한에도 지하철이 있다.” “빈익빈 부익부야말로 우리나라의 구조적 문제다.” “월남과 자유중국의 패망은 그 정권의 비민주성과 부정부패 때문이었다.” “너희들도 앞으로 현실을 똑바로 볼 줄 아는 사람이 돼야 한다.”- 북한을 찬양ㆍ동조하며 학생들을 교사한 것으로 제시된 이 발언들의 대부분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이광웅 선생 / 오송회 사건의 핵심인물이었던 이광웅은 1940년 익산에서 출생해 원광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4년 등단한 이광웅 선생은 많은 사람들에게 눈이 맑은 시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극단적인 반공주의가 횡행하던 그 시절 원양어업보다는 북이 쓰는 표현인 ‘먼바다 고기잡이’가 더 주체적이지 않느냐고 순진무구하게 응답하던 시인. 이제 고인이 되어버린 이광웅의 조각난 꿈을 누가 이어줄 수 있을까. 사람 좋은 것도 죄악이 되었던 1980년대 이광웅 시인은 자신이 온몸으로 체득한 이 땅 삶의 논리를 ‘목숨을 걸고’란 시로 남겼다. 이 땅에서 / 진짜 술꾼이 되려거든 / 목숨을 걸고 술을 마셔야 한다이 땅에서 / 참된 연애를 하려거든 / 목숨을 걸고 연애를 해야 한다이 땅에서 / 좋은 선생이 되려거든 / 목숨을 걸고 교단에 서야 한다뭐든지 / 진짜가 되려거든 / 목숨을 걸고 / 목숨을 걸고 ……금강 하구둑에 있는 이광웅 시비 <목숨을 걸고>/이재규 기획위원, 변관열기자 bky@sj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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