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기고]쌀 수급 불균형, 해법은 가공산업이다

기사 작성: 박은희 - 2025년 10월 20일 16시40분

매년 가을이면 우리는 황금빛으로 물든 들녘과 풍성한 벼 수확의 기쁨을 맞이한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는다. 수확 직후부터 전국의 창고와 미곡종합처리장에는 팔리지 못한 쌀이 산처럼 쌓인다. 정부는 시장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해 ‘격리’라는 응급처방을 반복하지만, 이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2024년 기준 쌀 생산량은 358만 5천 톤, 소비량은 352만 9천 톤으로, 정부는 쌀값 안정을 위해 20만 톤을 격리했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과는 거리가 있다. 단순히 재배면적을 줄이고 소비를 장려하는 방식만으로는 구조적인 과잉 문제를 해소하기 어렵다. 이제는 ‘얼마나 많이 먹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로 관점을 전환해야 한다.

그 대안 중 하나가 바로 ‘가공용 쌀 산업화’다. 가공용 쌀은 밥맛보다 전분 구조, 수분 흡수율, 분쇄성 등 가공적성이 우선되는 품종으로, 빵, 국수, 과자, 전통주, 시리얼, 즉석식품 등 다양한 산업 제품의 원료로 쓰일 수 있다. 산업 수요에 맞춘 품종 개발과 계약재배 체계가 결합 된다면, 쌀은 더 이상 ‘남아도는 곡물’이 아니라 ‘찾아 쓰는 산업 원료’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은 이미 1990년대부터 용도별 품종을 구분하고 식품업체와 계약재배를 제도화했다. 국수용 ‘시노노메모치’, 빵용 ‘시노노메노카오리’, 주조용 ‘고쇼노마이’ 등 대표적인 특화 품종을 통해, 밥쌀 소비 감소에도 불구하고 가공용 쌀 수요가 이를 보완해 전체 소비량을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이는 단순 농업 대책이 아니라, 가공식품·외식·수출 산업까지 아우르는 국가 차원의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가공용 쌀 품종 개발과 산업화 기반이 본격화되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용도별 특성을 갖춘 품종을 잇달아 선보이고 있으며 산업 현장과의 연계도 확대되는 추세다. 예를 들어, ‘가루미’는 제분성이 뛰어나고 분말 입자가 고르며 점도가 일정해 빵·과자 제조에 적합하다. 특히 밀가루를 대체할 수 있어 글루텐 프리 제품 수요 증가와 맞물려 성장 가능성이 크다. ‘아미면’은 국수용 특화 품종으로, 퍼지지 않고 쫄깃한 식감을 구현할 수 있어 일부 프랜차이즈와 중소면류 업체에서 상품 개발이 활발하다. ‘설갱’은 떡, 스낵, 전통 과자에 적합하며, 분쇄 시 백미 손실이 적고 전분 구조가 균일해 제조 효율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이들 품종은 모두 산업 현장에서 즉시 활용할 수 있는 실용성을 갖추고 있다. 이를 통해 농가는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하고, 가공업체는 특화된 국산 원료를 지속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 더 나아가 밀가루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곡물 자급률을 높이며, 지역 농업과 가공업을 연계한 새로운 일자리 창출도 가능하다. 가공식품 시장의 성장세, 건강·웰빙 트렌드, 전통 식품의 재조명과 맞물려 그 파급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앞으로 품종 개발, 계약재배, 가공제품 생산, 소비 확산의 선순환 구조가 정착된다면, 쌀은 다시 경제와 산업의 중심에 설 수 있을 것이다. 쌀 가공산업은 단순한 소비 촉진을 넘어, 농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쌀을 ‘산업자원’으로 전환하는 길이다. 이제는 “많이 먹자”가 아닌 “새롭게 활용하자”는 접근이 진정한 해법이며, 가공용 쌀 산업이 농업의 새로운 활로이자 쌀 산업의 미래를 여는 핵심 동력이 될 것이다./국립식량과학원 경지이용작물과 농업연구관 정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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