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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생전예수재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5년 08월 17일 15시55분

사람들은 누구나 부귀영화를 꿈꾼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쉽지 않다. 아니 어쩌면 스스로 누리고 있음에도 상대적으로 못 갖고 있다고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여튼 더 많이 소유하고, 그리고 더 높이 오르려는 욕망은 끝이 없다. 수행은 그 욕망을 억제하려는 다짐과 실천이다.

이승에서 얻지 못한 것을 다음 생애에서라도 얻고자 한다. 종교는 그 희망으로 존재한다. 선업(善業)을 쌓으면 내세에서는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는 염원은 현실의 삶을 더 견고하게 한다. 물론 현세의 욕망을 위한 사람도 있다. 그게 강하면 기복신앙으로 기울거나, 사이비 종교가 된다.

선업을 쌓아야 하는데 일상에서는 애매하다. 선악이 교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 분별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럴 때 종교가 기회를 제공한다. 계기에 맞춰 봉사나 기부. 기도를 통해 덕을 쌓게 한다. 그런 이벤트는 증거나 증인이 있기에 확신한다.

우리에게 윤달은 특별하다. 공월(空月)로도 부르는데 시간은 흐르고 있으나, 기록되지 않는 시간이다. 그래서 신을 속일 수 있다고 여겨서인지 묘지를 손보거나 이사 등 어려운 일들을 이때 치른다. 지금 음력 6월이 두 번째 돌고 있다. 때맞춰 사찰마다 생전예수재를 봉행한다.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을 보고 ‘왜 절에서 예수의 제사를 지내냐?’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예수재는 죽기 전에 업장을 소멸하고, 공덕을 쌓아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의례이다. 영산재, 수륙재와 함께 3대 불교의 천도의식 중 하나이다. 초기 불교에는 예수재가 없었다. 중국에서 시왕신앙이 성행하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죽은 사람을 심판하는 시왕에게 생전에 미리 공을 들여, 사후에 복을 받고자 하는 염원이 담긴 일종의 밀교 의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때 시작돼 조선 중기에 성행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경기도 광주 봉은사에서 윤달이 되면 장안의 부녀자들이 몰려들어 많은 돈을 불단에 놓고 불공을 드린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근거해 지난달 15일 국가유산청은 봉은사 생전예수재를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했다. 그 봉은사는 지금은 서울에 편입돼 있다.

불가에서는 사람마다 생전에 갚아야 할 빚이 있다고 한다. 그 빚은 경전 읽기와 보시를 통해 면제된다. 예수재에 참여하면 스님의 독경으로 경전은 해결된다. 보시는 종이로 만든 지전(紙錢)을 현금으로 구입 시왕전에 헌납해야 한다. 그리고 받은 징표를 잘라 절반은 태우고, 절반은 간직했다가 나중에 시왕전에 바친다.

죽어서 부귀영화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죽음이 두려우면 삶이 경건해진다. 예수재는 개인만을 위한 행사가 아니었다. 명복의 염원으로 바친 보시로 절에 오는 사람들에게 밥을 먹였다. 일종의 나눔 이벤트이다. 이런 정신이 확산돼 주변이 좀 더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김판용(시인‧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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