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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줄풍류 악보집 발간

정읍줄풍류, 구전심수의 선율전승을 위한 악보화

기사 작성:  이종근 - 2024년 11월 18일 08시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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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아양정 명인들의 가락을 바탕으로 한 전통음악을 정리한 ‘정읍줄풍류’ 악보집이 발간됐다.

이번에 발간된 악보집은 대금정악의 명인이었던 고 김환철 가락을 이수한 김문선이 채보, 체계적으로 수록했다. 거문고 악보는 김용근 명인의 가락을 그의 제자 원광호가 채보한 것을 기반으로 정리했고, 가야금은 전추산의 가락을 김홍진이 채보한 악보를 사용했으며, 양금과 대금, 단소 등 각 악기의 명인들이 남긴 가락을 정리해 악보로 담았다. 특히 해금과 피리의 경우, 원 악보가 없어 대금보를 기초로 재구성했다.

풍류란 속되지 않고 운치 있는 일이나 음악을 가리키는 용어다. 이러한 풍류의 정신을 즐기던 곳을 풍류방이라 불렀으며, 아양정, 이심정, 정악원, 샘소리터 등이 정읍의 그 대표적인 장소였다.

아양정은 정읍줄풍류의 산실로서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는 한국 전통음악의 중요한 유산이다. 정읍줄풍류는 오랜 세월 동안 구전으로 전해 내려왔다. 과거에는 스승에게 직접 배우고 암기하며 익히던 방식으로 전승되었기에, 별도의 악보가 필요하지 않았다.

악보가 있더라도 후대의 연주자들이 기억을 되살리기 위한 비망록 정도로만 사용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줄풍류를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 줄어들고, 악보 없이 구전으로만 전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전통을 계승하기 위한 악보집 발간의 필요성이 커졌다.

향제줄풍류의 초석이라 할 수 있는 정읍줄풍류는 풍류음악 형성에 있어 지방풍류문화의 사회적· 공간적 특징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다. 이에 정읍풍류음악의 줄풍류와 대풍류의 형성과 연행의 관련 기록을 통해 두 음악 간의 연관성을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 살펴보았다. 또한 정읍풍류의 사회적 · 공간적 특수성에 따른 두 음악의 관련성을 가늠해 보았다. 시대적인 흐름은 풍류방에 변화를 가져왔다. 향제줄풍류는 경제줄풍류와 달리 가락이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 전승계보나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전계문과 같은 지역 전문연주가들에 의해 재해석된 가락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재인청에 소속되어 있던 무계출신의 전계문과 같은 전문연주자들이 향제줄풍류에 참여하면서 변화무쌍한 무속 형식이 자연스럽게 줄풍류에 이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춤반주인 대풍류와 향제줄풍류의 밀접한 관계는 두 가지 관점에서 그 연관성을 유추할 수 있다. 첫째, 향제줄풍류의 태동에 음악적 주체로 참여한 전계문은 악기연주 뿐 아니라 춤에도 능한 인물이다. 전계문을 포함한 세습무계 재인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게 된 ‘향제줄풍류’는 춤반주 음악으로 사용되었던 대풍류 가락과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는 재인들에 의해 형성된 정읍 줄풍류의 사회적ㆍ공간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에 의하면 전계문으로부터 영산회상과 삼현육각을 배운 정형인이 향제줄풍류 피리 연주자로서 피리 계보 맨 위에 위치하고 있다. 정형인은 무계출신 춤꾼 정자선의 아들이다. 전계문과 정형인 모두 춤꾼인 동시에 전계문은 줄풍류 형성에 영향을 주었으며, 정형인은 줄풍류 수석 피리연주자로 활동하였다. 이들이 향유하던 대풍류 선율은 정읍향제줄풍류 형성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토대로 정읍 줄풍류는 재인들의 대풍류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김문선 샘소리터 대표는 “악보로 정리된 음악이 전통의 유연함을 잃고 화석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이번 정읍줄풍류 악보집은 이러한 우려를 최소화하고 학습의 편리함과 보존의 목적을 함께 추구했다”면서 전통음악 애호가와 후학들에게 소중한 자료로 정읍줄풍류가 가진 고유한 선율과 한국적 정서가 널리 퍼져 나가길 기대한다고 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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