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도둑맞은 후 분위기 달라진 천사마을, 올해도 그분은 오실까

지난해 얼굴 없는 천사 기부금 절도사건 후 기부 여부에 관심
전주시, CCTV 설치하고 경찰 등과 협조 체제 강화
마을주민도 천사 선행에 찬물 끼얹는 행위 있는지 경계 분위기

기사 작성: 권동혁 - 2020년 12월 22일 15시47분

전주 노송동 주민센터 인근에 얼굴 없는 천사를 상징하는 푯말이 서있다.

기부한 돈을 도둑맞고 주민센터에 5번이나 전화를 했다. 돈을 회수했는지 묻고 또 물었다. 지난해 12월30일 거액의 기부금을 도난당한 전주 노송동 ‘얼굴 없는 천사’의 얘기다. 그는 매년 12월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현금 뭉치를 놓고 떠났다. 지난해 12월30일에도 6,016만3,210원을 주민센터 인근 나무 아래에 놓고 갔다.

그런데 날벼락 같은 사건이 터졌다. 얼굴 없는 천사의 기부금을 노린 2인조 절도범이 숨어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범인들은 돈이 든 상자를 훔쳐 승용차를 타고 도주했다. 경찰은 다행히 절도범들을 사건 발생 4시간 만에 충남 논산과 대전 유성에서 검거하고, 훔친 기부금도 회수했다. 특수절도 혐의를 받은 범인들은 1심 법원에서 각각 징역 1년과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에선 형량이 늘어 각각 징역 1년6개월과 징역 1년이 나왔다.

재판부는 “익명의 기부자의 거룩하고 고귀한 성금을 훔친 것은 죄질이 매우 불량할 뿐만 아니라, 유튜브를 통해 사전에 범행을 치밀하게 공모한 점 등을 종합하면 1심 판결은 가볍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경찰은 당시 사건 후 인근에 CCTV가 없어 절도범을 추적하는데 애를 먹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노송동 주민센터 일대에 CCTV를 설치하지 않은 것은 얼굴 없는 천사를 위해 배려 차원이기도 하다. 그가 신분 노출을 극도로 꺼려하고 있고, 혹시 CCTV를 설치하면 선행을 하는데 지장을 줄까 우려한 면도 있다. 과거 특정 언론사가 주민센터 인근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천사를 추적하다 지탄의 대상이 된 것도 이런 점 때문이다.

하지만 절도사건 후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전주시는 노송동 주민센터 인근에 차량 번호판까지 인식되는 CCTV를 설치했다. 또 전주완산경찰서 남문지구대, CCTV관제센터와도 협조해 혹시 있을 수 있는 불미스러운 일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주민센터 직원들은 연가 사용은 물론, 외출까지 자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문구 전주시 노송동장은 “지난해 5번이나 전화를 걸어와 기부금 회수 여부를 물어 본 천사를 떠올리면 지금도 면목이 없다”면서 “올해는 그의 뜻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주민센터 직원 모두가 나서 준비를 마친 상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년 사건 이후 주민센터 인근에 살고 있는 주민들까지 천사의 선행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이 있는지 각별히 경계하는 분위기다”고 전했다. 주민 김모씨는 “얼굴 없는 천사는 우리 마을 뿐만 아니라 전주와 전북의 자랑”이라며 “이런 분의 선행이 헛되지 않도록 의심 가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는지 유심히 보게 되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지난 2000년부터 20년째 이어지는 얼굴 없는 천사의 기부금은 6억6,850만2,970원이다. 해마다 평균 3,342만원을 놓고 간 셈이다. 천사의 선행은 전국적인 익명의 기부자들을 낳기도 했다.

시는 지난 2015년 노송주민센터 인근에 기부천사 쉼터를 만들고, 일대에 ‘천사의 길’, ‘천사마을’이란 이름을 붙였다. 앞서 2010년에는 천사의 뜻을 기리고 기부문화를 확산한다는 취지로 주민센터 옆에 표지석을 세웠다. 돌에는 ‘얼굴 없는 천사여, 당신은 어둠 속의 촛불처럼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만드는 참사람입니다. 사랑합니다’라는 글자를 팠다. /권동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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