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월요아침]석인성시(惜吝成屎)

“귀하고 좋은 것을 너무 아끼지 말고
지금 사용하고 지금 하자”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5년 06월 15일 15시00분

유년시절 필자가 살았던 시골은 참 가난했다. 전․답이 30여 마지기(6,000평)쯤 되면 그 동네에서 부자 소리를 들었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가진 것 없이 가난하게 살았지만, 그래도 인심은 두터웠다. 어쩌다 잔치나 집안 제사가 있어 음식을 만들면 윗집, 옆집, 아랫집과 나누어 먹었다. 텃밭의 푸성귀나 산에서 고사리나 곰취, 버섯이라도 뜯어오면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조금씩이라도 나누었다.

특히 가족 중 누구라도 밖에서 늦게 들어오거나 하루라도 출타를 하면 그 가족 몫을 챙겨주려고 아끼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에는 냉장․냉동고가 없었기에 서늘한 곳이 유일한 보관처였다. 여름에는 보관하다가 쉬어(부패) 먹지 못하는 경우 종종 있었다.

이처럼 가진 것 없이 못 살았지만 배고픔을 견디며 서로가 가족과 이웃을 챙겨주었다. 그런데 챙겨주려고 아끼다 보니 부패 되어 서로 먹지 못하는 때가 더러 있어 아깝기도 했다. 그래서 음식이 상하기 전에 먹어야 한다는 것을 부모님은 가족들에게 늘상 일깨워 주셨다. 그러시면서 “아끼면 똥 된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시곤 했다.

사람들은 현재보다 미래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러기에 현재의 고통을 참고 곧 닥쳐올 미래의 즐거움과 행복을 떠올리며 지금,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란다. 하지만,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사람은 그 미래가 현재가 되어도 즐기지 못한다고 한다.

석인성시(惜吝成屎)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아낄 석(惜), 아낄 린(吝), 이룰 성(成), 똥 시(屎)자를 사용한다. 한마디로 말해 ‘아끼고 아끼면 나중에는 똥이 된다’는 뜻이다. 의역하면 ‘귀하고 좋은 것을 너무 아끼지 말고 지금 쓰고 지금 하자’라는 말일 것이다. 이 말은 아무래도 현재보다 미래의 행복을 더 중요시 한다고 믿는 데서 나온 말일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은 석인성시의 수준을 넘지 못하며 살고 있다. 특히 주부들은 귀한 그릇을 찬장의 안쪽에 넣어두고, 비싼 옷과 핸드백은 장롱 깊숙이 모셔 둔다. 필자도 퇴직을 한 뒤에는 새 양복은 장롱에 고이 보관해 두었다. 평소 입을 일이 거의 없고 일 년에 한 두번 예식장이나 장례식장에 갈 때 입는다. 생각하면 이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을 테지만, 좋은 것은 아껴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선뜻 사용하지 않는다.

이처럼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평소에는 저렴한 신발에, 허름한 옷을 입고, 싸구려 그릇을 사용하면서 살아간다. 검소함이 미덕이라는 생각이라면 존경이라도 할 텐데 ‘아끼다가 똥 된다’는 것이라면 소이부답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좋고 귀한 것이기 때문에 먼저 사용하는 게 옳은 것 같은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사실 세상에 아끼지 말고 부지런히 써야 하는 것들이 참으로 많은 데 그중에 재물도 포함된다.

다산 정약용은 그의 저서 여유당전서에 재물을 안전한 곳에 숨겨두는 가장 좋은 방법을 ‘범장화비밀 막여시사(凡藏貨秘密莫如施舍)’라는 문장에 담아 제시했다. 풀이하자면 “재물을 남모르게 숨기는 비결은 널리 베푸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라는 뜻이다.

그러니 좋은 옷 있으면 생각날 때 입고, 좋은 음식 있으면 먹고 싶을 때 먹고, 좋은 음악 있으면 듣고 싶을 때 들어야 한다. 더구나 좋은 사람 있으면 마음속에 숨겨두지 말고 마음껏 좋아하고 마음껏 그리워해 보자. 마음속에 들어 있는 사랑스런 마음 그리운 마음 정말로 좋은 사람 만나면 준다고 아끼지 말자. 그리하여 때로는 얼굴 붉힐 일 눈물 글썽일 일 있다 한들,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

이것저것 따지고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미룰 일이 아니다. 다음 기회로 미루고 미루다 보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다리의 힘이 빠지고, 기억력이 흐려지면서 의욕마저 사라지게 된다. 그러다가 마음의 물기 마르면 노인 된다. 그러니 미루지 말고 ‘지금’ 즐기자. 삶에 있는 중요한 세 가지 중에 황금, 소금, 지금이라면 그 지금이 더없이 중요하다.

/이태현(고원공간정보 부회장·전 무주부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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