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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길목]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 바이마르의 교훈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5년 03월 19일 12시50분

1919년 2월, 독일 국민은 독일 역사상 최초의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만들어냈다. ‘바이마르 헌법’을 선포하여 빌헬름 2세 황제의 독일제국을 무너뜨리고 바이마르 공화국을 탄생시킨 것이다. 바이마르 헌법은 여성의 투표권을 인정한 보통선거제도, 언론·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국민기본권, 다양한 사회복지제도의 도입 등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민주주의 헌법이었다.

유럽 역사에서 독일은 아주 오랫동안 프랑스와 영국 등에 뒤지며 유럽과 세계사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았다. 독일은 1800년대 유럽이 근대사회를 형성해 가던 시기에 두각을 나타내었다. 특히 문화예술과 철학 등 인문학 분야에서 두드러지는데 우리가 잘 아는 베토벤, 괴테, 실러, 헤겔, 마르크스 등이 모두 독일계 유럽인들이다. 하지만 정치나 산업 등에서는 여전히 프랑스, 영국 등에 뒤져 있었고, 이를 빠른 시간에 따라잡기 위한 방법으로 독일제국은 군사력을 강화하고, 여러 차례 전쟁을 일으켰다.

몇 번의 전쟁에서는 승리를 맛보았지만 1918년에 끝난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국이 되면서 막대한 배상금을 떠안게 되어 극심한 혼란에 빠졌고 바이마르 헌법을 제정하면서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변신하게 된 것이었다.

바이마르 헌법은 긴급조치권과 의회해산권을 대통령에게 부여한 문제점도 있지만 지금도 많은 국가에서 헌법을 제정할 때 반드시 검토하는 민주주의 헌법의 교본처럼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 기반한 바이마르 공화국은 채 15년을 버티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바이마르 공화국을 무너뜨리고 새로 권력을 장악한 이는 바로 1933년 총리에 등극한 히틀러이다. 히틀러는 온갖 정치술을 발휘하며 삽시간에 바이마르 헌법에서 보장하는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파시즘에 기초한 제3제국(나치 독일)으로 정치체제를 바꾸어버렸다. 그 결과 독일 국민의 삶이 어떻게 무너졌고, 독일이 무슨 짓을 벌였는지는 우리가 잘 아는 바이다.

바이마르 공화국이 무너지는 과정은 우리의 현실과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첫째, 불안정한 경제로 인한 경제적 위기감은 급진주의자나 극우 성향의 정치세력을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된다는 점이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민주주의적 진전을 이루어냈지만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경제 위기로 국민의 삶이 피폐해져 가면서 정치에 대한 불만이 높아져 갔고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정치세력에게는 기회가 되었다.

두 번째는 주요 정치세력간의 극단적인 투쟁은 제3의 세력에게 성장 기회를 준다는 점이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주요 정치세력들은 대화와 타협보다는 서로를 향한 극단적인 공격, 암살이나 폭동, 군부 쿠데타, 법적 처벌 등 상대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려 하였다. 그 결과 극 소수파였던 나치당에게 정치적 길이 열렸다. 극한의 정치투쟁이 정치적 공백을 만들어낸 탓이다.

세 번째는 법과 제도의 편파적 적용이다. 바이마르 헌법을 통해 사회적 혁신과 변화를 이끌어냈고 다양한 민주적인 제도를 설치하였지만 이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기존의 기득권 세력들로 그 취지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 사법부는 이전 시대의 우파가 여전히 장악하고 있어 사회적 혁신과 개선을 요구하는 좌파에게는 혹독한 처벌은 내리면서도 같은 편으로 여겨지는 우파는 처벌하지 않거나 가벼운 처벌을 내리는 등 매우 편파적으로 법과 제도를 적용하였다. 좌파가 기소된 범죄 22건은 10건의 사형과 중형으로 처벌한 반면 우파가 저지른 354건의 암살은 단 1건만 유죄로 판결하였다. 심지어 1923년 쿠데타를 일으킨 히틀러 조차 9개월의 가벼운 징역형만 선고하여 처벌보다는 오히려 히틀러가 거물이 되는 기회를 열어주었다.

마지막으로는 합리적인 시민들의 침묵과 무관심이다. 사회 전반이 광기에 휩싸이는 것을 바라보면서도 언론과 지식인들은 침묵하거나 방조하면서 히틀러의 비이성적인 망발과 거짓말은 점점 진실처럼 되는 상황에 이르렀고 결국 히틀러에게 독일을 가져다 바쳤다. 그 결과 바이마르 공화국의 민주주의는 가차없이 파괴되었고 자유로운 영혼과 혁신적인 실험정신으로 찬란하게 꽃 피던 바이마르 문화와 예술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문윤걸(예원예술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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