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저는 시와 연애했지요

[책마주보기] 김윤희의 '핵에는 책으로'(하채현)

기사 작성: 이종근 - 2025년 03월 10일 08시20분

여기, 시(詩) 사랑에 빠진 한 시인의 고백을 소개하려 한다.

생의 이면에 담긴 패러독스(paradox)를 날쌔게 터치한 '핵에는 책으로'다. 이 책의 저자 김윤희는 1964년 '현대문학'으로 데뷔하여 '성자멸치', '오아시스의 거간꾼'으로 공초문학상, 시와시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의 식량이 아니었으면 무엇으로 일생 연명했으리'('이 달의 육필 시' PEN문학')

시의 양식으로 연명했다는 고백에, 나는 감사하고 안심한다. 어떤 맛난 양식에도 허기를 느끼는 나와 달라서 감사하고, 점점 시를 잃고 생각으로 채워진 나를 돌아볼 때, 시의 양식을 먹는 김윤희 시인이어서 다행이라고 안심한다. 어쩌면 평안하시리라고 안심한다.

최후통첩, 유예, 절체절명, 불가촉 치명 전류, 불법과 금언, 선종, 독종, 망발, 독작(혼술). 이렇게 강렬한 명사들로 시와 열애 중인 시인 김윤희. 읽는 내내 나는 불타고 식고 불타고 식고 하면서도 가슴 언저리가 찡하다. ‘밤 도와 피 찍어 쓴 유서 같은 절명시’라서일까? 시를 읽는 내가 ‘애인이 내놓은 희망 없는 백지수표 그 앞에서 발가벗고 춤추기(45쪽)’ 때문일까? 아무튼, 삶이 내몰린 듯 흘러가고 연애가 좋아야 거기에 속아서 ‘안녕’ 인사 나눌 것이기는 하다.

새해 아침, 이 책을 받았다. ‘詩集上梓’(78쪽). 나는 김윤희 시인의 안부를 받잡고 두 손 모아 절을 올렸다. ‘이리저리 다 끊기고/ 생사조차 잊히고 질긴 숨만 갖고 있다/ 부치러 가는 시인의/ 안부 방식’을 내 이름 석자 써 주신 서명으로 알겠다. 절을 올린 후 나는 ‘수유리 환타지’ 일곱 번째 초록빛깔 시집을 내 왼쪽 늑골을 한껏 젖혀서 열고 깊숙이 집어넣었다. 이로써 내 동안거도 끝났다. 8부로 이루어진 시집은 거의 명사들인데 흔한 해설도 없이, 이진명 시인의 순정한 발문만 달았다.

누군가 전화로 27쪽(블랙커피 콤플렉스)을 먼저 읽어보라 일러준다. ‘선생 집 찾아온 제자/ 그 집 안주인 커피 타는 부엌에 거든다고 들어와 / 무심코 커피잔에 프림 타는 것 보고/ “선생님은 블랙 드시는데요” 빼앗듯 말리던 그녀 생각나네/ 혹자는 늙지 못한 시샘 질투 노추라/ 하지만 그것 맞지만/ 내게 없는 천진무구 그 무염의/ 도전/ 백태 끼지 않은 백치/ 원석’ 후루룩 읽고는 ‘무장해제’를 이렇게 썼구나! 손뼉을 탁! 쳤다. 그뿐인가? 시인은 우리에게 ‘제 안 굳센 결박 제 손으로 울며 푸는 무애(無涯)의 비법(58쪽)’을 소개하고, ‘던지듯 건네준 구리반지의 유용(56쪽)’도 알려주었다. 이 구리반지는 100만 송이 장미와 무게가 같다.

언어 중독자 김고독(김윤희 시인)이 ‘목숨 기울여 절약하고 또 했으나, 끝까지 남은 피멍 그 뇌수 철야로 찍어 만든 한 책(55쪽)’, 경배한다. 그런데 당신은 시집의 제목, 왜 ‘핵’에는 ‘책’으로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하채현 작가는

인문도시센터 일반공동연구원

한국인문사회질학회 편집위원

우석대 국어교육과 교수

■ 이종근 기자의 최근기사

저는 시와 연애했지요

진지한 영혼의 고백

전주국제영화제,‘농심신라면상’ 신설

돌아온 민주주의의 봄!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다시, 민주주의로’ 섹션

새만금 관광활성화 사진전‘REVITAL 새만금’

‘우리는 늘 선을 넘지’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성대하게 막올려

26개의 원으로 영화와 영화제, 영화제의 과거와 미래의 연결 보여줘

[데스크의 눈] 광복 80주년의 의미 살려야

<부음> 정순흥 상

전북동부 문화유산돌봄센터, 국가유산 재난대응 합동소방훈련

전주 교동미술관서 군산대 대학원 김경희 박사학위 청구전

Leave a Comment

많이 보는 기사

하트 날리는 우범기 전주시장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레드카펫

이동진 희망찬동행포럼 상임대표 대선 출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