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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 시뇨리지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11월 03일 14시17분

십원빵이 유행이다. 십 원짜리 주화와 똑 닮았을 거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면 생각보다 크다. 이제 일 원짜리는 구경하기 힘들다. 십 원짜리도 은행에서 이자 계산할 때나 쓰는데, 대개는 창구의 저금통에 다시 넣는다. 실제 쓰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때 거스름돈 일 원짜리가 귀찮았는데 지금은 십 원짜리가 그런 대우를 받는다.

크기도 예전 일원 주화처럼 작아졌다. 이렇게 작아진 데에는 아픔이 있다. 2010년에 십원 짜리 주화 5억 원어치를 녹여, 12억 원어치의 구리로 만들어 판 희대의 사건이 발생했다. 국기를 흔드 중법죄였으나 당시 이를 처벌할 법이 없었다. 법인은 이 점을 알고 악용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생각해 낸 것이 주화를 구리로 녹이는 과정에서 생긴 폐기물을 제대로 관리했는지를 찾는 것이었다. 그리고 폐기물관리법 위반으로 범인을 기소했다. 그 후 화폐 훼손에 대한 처벌 법이 만들어지고, 십 원짜리 주화의 크기도 작아졌다.

돈의 가치보다 돈을 만든 소재의 가치가 더 높으면 훼손 가능성은 높다. 인플레이션이 심한 베네수엘라 등 일부 국가에서 지폐보다, 그 돈으로 만든 방석이나 바구니 등 수공품의 가치를 높게 쳐준다. 지폐는 받지 않지만, 지폐 수공품으로는 빵과 교환이 가능하다.

화폐를 발행해 얻은 이익을 ‘시뇨리지’라고 한다. 다른 말로는 ‘주조이익’, 또는 ‘인플레이션 조세’로도 불린다. 시뇨리지라는 어휘는 중세 유럽의 봉건 영주를 부르는 세뇨르(Seignoir)에서 왔다. 당시 조폐권을 가진 영주들이 새로운 화폐를 주조하여 생기는 이익을 그렇게 부른 것이다.

주화보다는 지폐를 만드는 것이 더 큰 이익이다. 미국 중앙은행은 1달러를 발행하는데 3.2센트의 비용이 발생한다고 밝힌 바 있다. 1달러 발행의 수익율이 무려 96.8%이다. 10달러나 100달러의 시뇨리지는 더 크다. 더구나 엄청나게 발행하기에 천문학적 이익을 얻는다. 그런 만큼 위조지폐에 대한 처벌도 엄하다. 일부 국가에서는 사형에 처하기도 한다.

화폐 발행 권한은 국가나 중앙은행이 갖는다. 국가 재정이 어렵다고 돈을 마구 찍어내면 돈의 가치는 하락한다. 그렇게 부족한 재정을 메우다 보면 지폐가 종이만도 못한 상황이 오는 것이다. 이게 초인풀레이션이다. 우리의 경우 대원군의 당백전이 그랬다.

화폐만 시뇨리지가 있는 것은 아니다. 백화점 상품권이나 지역화폐에도 발생한다. 현금으로 구입한 상품권이나 지역화폐를 바로 사용하지 않아 발생하는 이자나, 소지자가 분실해 쓰지 않아 생기는 이익도 시뇨리지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쫓는다. 그리고 열심히 일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달러는 기축통화이다. 국가간 거래를 달러로 한다. 달러를 아무리 많이 찍어도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많이 쓰여서다. 미국 경제를 떠받히는 힘이 달러 시뇨리지라니 돈에 정의가 있는지 묻고 싶다.

/김판용(시인‧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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