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이승연교수의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이야기]민속문화유산 당산과 석장승

“민간신앙의 표상인 당산과 석장승에서 서민들의 간절한 염원을 본다.”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07월 09일 15시05분

우리 문화유산중 서민들의 생활공간과 가장 가까운 마을에서 수호신처럼 여기며, 민속신앙의 표상이 되었던 당산나무, 벅수, 솟대, 석장승 등이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특히 전북에 남아 있는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는 남원의 서천리 당산·실상사 석장승, 순창의 충신리 석장승·남계리 석장승, 부안의 동문안 당산·서문안 당산이 있으며, 전북특별자치도 민속문화유산으로는 남원의 주천석 장승, 부안의 남문안 당산·돌모산 당산·죽림리 석장승·월천리 석장승·쌍조 석간, 고창의 사내리 당산 등이 있다.

이러한 당산, 벅수, 석장승 등은 모두 같은 의미이나 섬겨졌던 대상물이나 그 소재와 형상에 따라 명칭을 달리 할 뿐이다.

당산(堂山)은 마을신앙의 일환으로 토지나 부락의 수호신에게 제사 지내는 곳을 일컫는 신앙 관습에서 유래한 가장 일반적인 용어이다. 대개 마을 부근의 산이나 언덕 또는 평지에서 중심지가 될 만한 곳에 단을 만들고 기암이나 고목을 서낭신으로 모시거나 사당을 지어 신주(神主)를 모시고 매년 마을 공동으로 제사를 지내며 마을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였다.

장승은 사람 머리 모양의 기둥을 말하며, 주로 돌기둥이나 나무 기둥의 윗부분에 사람의 얼굴 모양을 새겼는데, 돌로 만든 장승을 석장승이라고 한다. 이는 마을이나 사찰 입구에 세워져 지역간 경계를 표시함과 동시에 마을을 표시하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호신 역할을 하였으며, 더 나아가 마을의 평안과 풍농·풍어 등을 기원하고, 질병과 재앙을 막아 주며, 자손의 번창을 도와주는 마을 공동신으로 모시면서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발전하였다. 따라서 이 장승은 보통 남녀로 배치해 음양의 조화를 꾀하는데, 아들을 신봉했던 여인들의 기원을 담은 많은 전설이 내려오고 있으며, 때로는 마을의 지형이 역적이 될 인물이 나올 지형이라서 그것을 막기 위해 이 장승을 세웠다고도 하여 풍수의 기운을 바꾸는 역할까지 한다고 믿었다.

남원 서천리 당산은 당산나무, 돌장승(벅수), 솟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을의 허한 곳을 방어하고 서쪽을 진압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하는데 석장승의 몸체에 각각 ‘방어대장군’·‘진서대장군’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구전에 따르면 장승이 부부싸움을 하다 진서대장군의 목이 부러져 마을 사람들이 붙였다고 한다. 순창 충신리 석장승은 장승의 코가 아들을 낳는데 효험이 있다는 민간신앙에 따라 아들 낳기를 원하는 마을 아낙들이 떼어갔다고 전해지는데, 이마에 새겨진 혹은 불상의 눈썹사이에 있는 백호(白毫)를 연상시키나 무서움보다 웃는 듯한 입 사이로 내민 혀의 모습에서 소박하고 친근감을 느끼게 해준다.

순창 남계리 석장승은 얼굴의 양 볼에 곤지를 찍어 여성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데 오른쪽 눈은 아래를 내려다보는 부처님 눈맵시를 하고 있는 반면 왼쪽 눈은 위로 치켜뜬 모습으로 눈웃음을 짓는 듯한 맵시를 하고 있어서 애교스럽기 조차 하다.

남원 실상사 석장승은 대장군의 기단석과 상원주장군의 뒷면에 있는 기록을 통해 실상사 석장승들은 1725년(영조 1)과 1731년(영조 7)에 세웠음을 알 수 있게 하며, 머리에 모자를 쓰고 튀어나온 둥근 눈에 주먹코와 커다란 귀를 갖는 등 비슷한 양식을 보여 귀신을 쫓는 장승들의 표정이 험상궂기는커녕 오히려 익살스럽고 해학적이다.

부안 서문안 당산의 꼭대기에는 돌로 조각된 새가 얹혀 있는데 할머니 당산은 새를 따로 얹지 않고 돌기둥 윗부분에 새겨서 표현한 특징을 보인다. 풍수지리설에 바탕을 둔 신앙물 중 하나인 이 돌기둥은 ‘짐대’라고도 하는데 이곳의 지형이 배가 떠있는 형상과 같아서 안정감을 주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보여 진다. 부안 동문안 당산은 꼭대기에 돌로 조각한 오리가 올려져 있는데 돌기둥 주변은 당산제에서 쓰인 동아줄로 칭칭 감아놓기 때문에 평상시에는 정상부분의 오리와 그 밑의 기둥이 약간만 보일 뿐이다. 그러나 동아줄을 돌기둥에 감는 것을 ‘옷입힌다’고 하여 마을 전체의 복을 기원하고 농사의 풍요를 바라는 염원이 담긴 의미로 신앙물을 인격화 함으로써 돌기둥을 동제의 주신으로 받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안 쌍조 석간은 굵직한 돌기둥 위로 두 마리의 새를 조각하여 올려놓았는데 새를 얹어 두는 것은 새의 활동영역이 하늘·땅· 물 등으로 광범위하여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매개체로 믿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부안 돌모산 당산은 이 마을의 지형이 배모양이여서 가벼우면 배가 쉽게 파손될 우려가 있으므로, 풍수지리적으로 이를 막기 위해 배에 기둥을 꽂아 무겁게 하기 위하여 솟대 모양의 돌기둥을 세웠다 한다.

이와같이 지금까지 전북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의 당산과 석장승에서 특별하거나 장엄하지는 않지만 서민들의 삶과 생활, 그리고 민간의식을 잘 살펴볼 수 있다. 이에 더 나아가 나무와 돌 등의 무생물들에게도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어 인격화 하면서 믿음의 대상으로 신격화 했음은 마을공동체의 안녕과 행복, 그리고 풍년과 풍어, 다산의 기원을 위해 대상 조형물을 소박하고도 해학적으로 표현하면서 함께 호흡하려고 했던 우리 민족성을 잘 나타낸 문화유산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이에 주변에 남아 있는 당산과 벅수, 석장승 등을 만나면 우리 조상들이 공유했던 시공간을 함께 느껴 보시기 바란다./이승연(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전문위원,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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