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5.18 광주의 그 날’

44주년 돌아본 양영두 위원장, “5.18은 아픔이자 죄책감”

기사 작성: 복정권 - 2024년 05월 16일 15시30분

5월이 오면 우리는 광주를 소환하고 기억한다. 하지만 5월 18일, 광주를 기억하는 방식은 다르다. 누구는 ‘민주화의 분기점’으로, 누구는 아픔으로, 누구는 죄책감으로 기억한다.

양영두 소충사선문화제 제전위원장에게 5.18은 아픔이자 죄책감이다. 그는 5월 한 달 동안은 검정 바탕에 빨간 무늬가 있는 넥타이만을 차고 다닌다. 검정색은 근조를, 빨간 무늬는 피를 의미한다고 한다.

당시 야당인 신민당 정책위원과 국회 비서관 신분이던 양 씨는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는 김대중 선생을 석방하고, 대통령직선제를 요구하는 광주·전남 민주시민에게 무차별 폭행과 살상행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광주로 가기로 했다. 광주의 참혹한 진실을 조사하기 위해 미국과 일본 외교관, 언론인 등과 함께 비밀리에 광주로 향했다.

광주잠입은 당시 권노갑 김대중 총재 비서실장. 유훈근 비서 등과 함께하기로 했으나, 계엄법 위반으로 두 사람이 전국에 지명수배되는 바람에 양 위원장과 미일 외교관, 언론인 등과 동행하게 된 것.

광주잠입은 5월 18일 무차별 진압이 시작된 10일이 지난 28일이었다. 하지만 신군부의 계엄 발표로 통제된 광주로 들어가는 것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언론은 물론 모든 것이 통제된 광주에 들어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너무 힘이 들어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당시 계림동에 사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광주 진입에 성공할 수 있었다.” 양 씨 일행이 마주한 것은 ‘광주의 참혹함’이었다.

거리는 민주항쟁이 발생하고 10여 일이 지났지만, 그날의 참혹한 상황을 증명하듯 찢어진 옷가지와 벗겨진 신발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적막한 거리에는 민주항쟁 이후 사라진 자식과 남편을 찾기 위해 나선 부녀자들의 울음소리만 가득했다.

“당시 신군부는 시민군들의 시신을 전남도청에 모아두고 모든 상황을 통제했습니다. 눈으로 직접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습니다. ‘과연 이게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것인지 눈을 의심할 정도였습니다.”

도청 입구에서 50여 명의 경찰과 계엄군은 사망자의 직계 가족으로 확인된 사람이 아니면 출입조차도 막고, 전국 각지에서 피붙이를 찾으러 온 가족들에게 시신을 인도하지 않아 장례조차 치를 수 없게 했었다.

양 위원장은 이 같은 참상을 알리기 위해 광주시민군 관계자와 전남대 송기숙 교수, 홍남순 인권변호사 가족들을 만나 ‘5월 18일 광주의 그날’의 일을 기록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의 현장 조사는 다음 날인 30일, 끝을 맺게 된다. 29일 밤 양 위원장은 서울에 있던 가족들이 걱정돼 전화를 걸었던 수화기 너머로 “당신 수배됐으니 얼른 피하라”는 아내의 말을 전해 들었다.

전국에 수배돼 광주를 도망치듯이 떠난 양 위원장은 두 달간의 도피 끝에 부산에서 보안대 군인들에게 붙잡혔다. 양 위원장은 무려 20여 일간의 모진 고문을 받았다. 혈기와 사명감으로 이겨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오른쪽 눈이 실명돼 고통과 불편을 아직도 겪고 있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고문의 후유증이 그를 괴롭히고 있다. 양 위원장은 국가보훈처로부터 상이 부상 민주유공자로 인정받았다.

양 위원장의 목숨을 건 현지 조사는 이후 조사된 자료와 진술들이 미국과 일본 등 세계 언론에 보도되어 광주 민중항쟁의 진실이 세상에 알려지는 시발점이 되었다.

양 위원장은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군부에 맞서다 희생하신 분들에 비하면 한없이 부끄럽다. 하지만 당시 그 현장을 찾아 그들의 행동과 의지, 역사를 알릴 수 있어 다행”이라고 회고한다.

“40년 세월이 흐르면서 5.18을 단순히 광주의 아픈 역사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 안타깝다”라며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와 번영은 당시 수많은 시민의 피로 꽃을 피웠다는 사실이 다시는 왜곡되지 않았으면 한다”라는게 양 위원장의 염원이다.

한편 올해로 44주년이 되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광주 북구 망월동 민주 묘지에서 개최된다. 양 위원장은 이날 국가보훈처장의 초청을 받아 기념식에 참석한다. /복정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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