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아침발걸음]공동체적 공감 능력의 부재

사회적 죽음에 대한 공동체적 치유가 필요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04월 08일 15시14분

한 개인의 죽음은 그에게 있어서는 세계 전체의 무너짐과 맞먹는 것이다. 더욱이 그 죽음이 국가의 폭력, 무능, 태만, 의무 불이행으로부터 불거진 참사라면, 당사자에게 이 세계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고통의 도가니가 되고 만다.

예컨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국가의 부름에 응하여 참전하여 적군의 포탄을 맞아 순국했다면, 이런 죽음을 사회적인 죽음으로 인정한다. 순국선열로 국립묘지에 안장하고 기릴 뿐 아니라 국가보훈 차원에서 훈장을 수여하고 기념비를 건립하고, 장제비와 연금을 지급하는 등 여러 가지 보상을 한다. 이는 국가가 해야 할 마땅한 일이다. 그 개인의 죽음을 사회적인 죽음으로 인정하고 여러 가지로 국가가 보훈하는 일을 공동체적 치유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공동체적 치유를 거부하는 정치 체제는 민주국가가 아니다. 일제강점기에 징병, 징용, 위안부 등을 죽음으로 내몰고 손해를 배상하지 아니하는 일본 정부나 서울 이태원 참사를 개인의 죽음으로 인식하고 공동체적 치유를 하지 아니하는 정권이 이에 해당한다.

이태원 참사, 오송 지하차도 참사, 고 채상병 참사 등으로 희생된 국민들, 그분들이 왜 죽었는지에 대해 진상 규명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또한 개별적인 죽음이 진실과 함께 땅에 묻혀 있는 한, 산 자는 그의 탈상을 미룰 수밖에 없다. 탈상을 했다고 하더라도 진실로 아직 탈상한 것이 아니다. 고 채수근 상병 사건의 조사도 끝나지 않았는데 사건을 왜곡한 당사자인 피의자 전 국방장관 이종섭을 도대체 왜 호주대사로 임명해서 국외로 빼돌렸는가. 양심(良心)에 찔리는 일을 저지르지 않고서야 어찌 그런 의뭉한 일을 할 수 있는가. 국민에게 그 사건을 덮어 숨기거나 혹은 망각하게 하려고 한 일이다. 여권 관계자는 사소한 일 가지고 여론이 지나치게 떠든다고 말한다. 채상병의 죽음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다. 그의 부모님의 심정이 되어 보면 짐작이 간다. 부모님으로서는 온 세상을 다 준다고 해도 결코 바꿀 수 없는 귀한 아들이다. 그 아들이 부모님의 인생의 전부요, 이 세상의 전부이다. 어찌 이 일이 사소한 일인가. 그들의 말을 빌리자면, 사소한 일(?)로 마침내 이종섭 장관은 호주 대사직을 그만두었다.

맹자는 제선왕(齊宣王)과의 대화에서 제선왕이 자신같은 사람도 왕노릇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묻자, 어진 마음만 있으면 왕노릇을 할 수 있다고 즉답하였다. 왕이 일전에 사지(死地)로 끌려가는 소(牛)가 불쌍하여 차마 죽임을 당하는 꼴을 보지 못하겠다고 하여 양(羊)으로 바꾸게 명(命)한 일을 들어 그 마음이라면 충분히 왕노릇을 할 수 있다고 대답하였다. 맹자는 왕도정치 실현에 있어서 “보민(保民)”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보민이란 말은 ‘국민을 사랑하고 보호한다’는 뜻이다. 맹자는 모름지기 백성을 사랑하고 보호해야 곧 왕노릇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이태원 참사를 비롯한 여러 가지 참사로 많은 시민들이 죽어도 지도자들이 그것을 공감을 하지 못한다. 국민의 리더가 아예 나 몰라라 하거나 사소한 일로 본다.

2024년 1월 26일 중대재해법 50인 이하 사업장 2년 실시 유예 시도가 야당의 의원 숫자에 눌려 불발되자 여권은 강한 유감을 표했다. 그 유감 표명이야말로 참으로 유감이다. 이 법안은 소규모 사업장이라고 할지라도 사업장에서 재해로 사망한 근로자가 생기면 회사 대표가 책임을 지는 법안이다. 중대재해로 인한 사망자를 줄이려면 이 법안이 결코 유예(猶豫)되면 안 된다. 최근에도 일터에서 재해로 죽는 분들이 끊이지 않는다. 가급적 빠른 시일에 법이 시행됨이 마땅하다. 왜냐하면 인간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직원의 생명이 중요한가, 아니면 회사 원활한 운영이 더 중요한가. 직원의 목숨도 중요하고 회사 운영도 중요하다. 둘 다 중요하다. 그러나 한 편을 선택해야 한다면, 맹자의 말마따나, 직원의 생명을 살리는 쪽에 서야 한다. 국민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지도자는 반드시 무엇보다도 먼저 중대재해로 사망하신 직원분들과 이태원 참사로 희생되신 분들의 편에 서야 한다. 이들은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 국가와 국민이 위로해 주어야 한다. 이것이 공동체적인 치유이다. /유종국 (전 전북과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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