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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담은 진솔한 풍경

김스미의 미술산책〈55〉 대 피터르 브뤼헐 ‘농부의 결혼식’
평범한 일상을 표현한 사실주의 미술의 시작
그림 소비자가 귀족사회인 당시 파격적 소재

기사 작성:  이종근 - 2024년 04월 03일 14시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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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결혼식’, 1568, 목판에 유채, 114×164cm, 빈 미술사박물관





△‘이카로스의 추락’ 부분, 1555, 73.5×112cm, 브뤼셀왕립미술관



진실을 말함이 두려울 때 쓰는 방어기제가 있다. 무관심이다. 대서양 한가운데 조난된 개 한 마리를 전 세계인이 들여다보며 구해낸다. 그러나 수만 명이 죽어가도 모른 체 할 수 있는 인간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망원경 효과라 한다. 도덕의 잣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뇌의 편향성에 대한 연구다. 인간의 속성인 무관심을 끄집어내 세밀하고 적나라하게 묘사한 작가가 있다.

16세기 네덜란드 풍속화의 거장 대 피터르 브뤼헐(1525-1569)이다. 물이 범람하는 낮은 땅이라는 플랑드르 지역의 대표 화가다. 그의 그림은 종교와 권력,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선의 풍자와 해학이 주요 테마다. 그는 아들 피터르 브뤼헐 2세(1564~1638)를 포함하여 아내와 딸, 사돈과 팔촌까지 모두 화가였던 브뤼헐 가문의 시조다. 브뤼헐 가문의 그림 공방은 200년간 성공 가도를 달린다. 당시 종교화의 배경에 쓰던 풍경을 꺼내 ‘풍경화’라는 장르를 만든다. 특히 풍속 풍경이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시점(A bird eye view)으로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모습을 그린다.

작품 ‘농부의 결혼식’은 농가의 결혼식 피로연이다. 농민이 주인공인 이 그림은 그림 소비자가 귀족사회인 당시로서는 파격이다. 특별한 것을 말하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표현한 사실주의 미술의 시작이다. 누구보다도 따뜻한 시선이지만 자세히 보면 결혼식보다는 다른 곳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온통 먹는 삼매경이다. 샤프란을 넣은 전통음식인 죽과 빵이 전부다. 모자에 스푼을 꼽고, 문짝으로 음식을 나르고, 악사의 시선도 음식이다. 농민들의 빈곤한 삶이 읽어진다. 녹색 천 아래 눈을 내리깐 신부는 주연이 아니다. 항아리에 음식을 따르는 이가 신랑일까? 검은 옷을 입은 사제는 유일한 귀부인과 대화 중이다. 좌석도 서열이 있나 보다. 브뤼헐의 풍속풍경화는 시대를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물이다.

오른쪽 작품은 ‘추락하는 이카로스’의 부분 도상이다. 바다에 떨어져 허우적거리는 이카로스의 다리와 발이 조그맣다. 이카로스는 밀랍 날개를 달고 태양에 다가가려다 밀랍이 녹아서 추락했다는 그리스신화 속 인물이다. 허망한 욕망의 끝이 처참함을 말한다. 브뤼헐은 이 작품에 여러 이야기를 담았다.

멋진 돛을 달고 항해하는 배는 부자의 꿈을 실은 무역선이다. 멀리 항구를 환하게 비추는 태양의 유혹이 바다에 일렁인다. 가지 않고 배길 자가 어디 있는가! 쟁기질하는 농부는 이카로스의 비명에도 아랑곳없다. 그의 복장은 파티복이다. 일한 대가로 올 수 있는 풍요를 말한다. 양치는 목동도 어부도 묵묵히 제 할 일만 한다. 그들의 무관심은 냉정함이 아니다. 주어진 현실에서 열심히 사는 성실함을 대변한다.

브뤼헐은 당시 플랑드르를 지배하던 스페인의 탄압을 풍자한 많은 스케치를 그렸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유언으로 모두 불태워진다. 그는 작품 ‘베들레헴의 인구조사’를 통해 혹독한 세금 징수를 고발한다. 오만함의 상징물로 그로데스크 한 바벨탑을 그려 잔인한 현실에 저항한다. 화가의 붓은 어떤 장르의 언어보다 강력한 힘이 있다. 시대의 불의에 맞서 현실 권력을 비판한 그의 작품이 명작이 되고 브뤼헐의 천재성이 위대한 이유다. 네덜란드 민간속담을 나름의 해석으로 시각화하여 대중교육의 장을 연다. 그의 작품 속 무관심은 도피로서의 무관심이 아니다. 브뤼헐은 어떤 행위나 인물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 비판은 오로지 감상자의 몫으로 남긴다. 진짜 무관심은 저항하지 않는 것이다. 눈감아 주는 것이다. 모르는 것도 따져보면 무관심이다./화가 김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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